[21년 10월호/359호]_요즘저는_후배님들아, 아야, 아야 하도록~~~(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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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10-13 16:16 조회1,148회 댓글0건본문
후배님들아, 아야, 아야 하도록~~~
학생운동이 절정이던 80년대 초에 학생운동의 메카였던 신촌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눈감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싸맨 채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던 내가 아이들을 낳고 멀리 포항까지 내려온 후, 마치 시대에 진 빚이라도 갚듯 학부모 운동에 뛰어든 것이 벌 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건 아무런 아픔도 고뇌도 없는 무뇌아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도 여전히 세상에 눈감고 살 아가던 내가 참교육학부모회를 만나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열악하고도 불편부당한 교육 현실을 마주하고는 예전의 나와는 달리 더 이상 참지 않고 투사(?)로 나섰던 것을 보면 어쩌면 내게 또 다른 의미의 ‘극성 엄마’ 기질이 있었던 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내 성인기의 가장 뜨거운 시간들이 참학과 함께 한 십 수 년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현장의 일선에서 물러난 것도 또 벌써 만 4년이 가까워 온다. 세월이란 참.
사회정의를 위한 여러 투쟁들과 갖가지 농성, 포항의 평준화를 위한 단식에 이르기까지 두 주먹 불끈 쥐고 앞장섰었던 투사에서 이제는 돌아와 선 나이든 누이(?) 같은, 날근날근한 초로의 몸으로 고만고만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지내는 내게 최근의 근황을 전해달라는 요청은 내 몸 상태 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각설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그간 나는 참학의 일선 일꾼일 때부터 시작한 심리학에 좀 더 매진하고 있다. 지금은 포항에서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 낙담으로 빗나가고 있는 청소년들과 프로그램이나 상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또 최근에는 포항을 중심으로 경주, 울진 등 경북 전역의 시민사회 활동가 출신의 전문가 그룹을 조직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장애부모, 참학 활동가들 대상의 프로그램과 교육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그럭저럭 나에게 주어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해 가며 사는 것이 나의 근황이라면 근황일 것이고,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모습 에서 별 변함이 없지 않을까 싶다.
지난 추석 연휴, 코로나19로 여전히 이동이 엄중한 시국에 그래도 아직 미장가인 큰 아들놈과 결혼한 지 1년 좀 넘는 둘째 내외가 명절이라고 포항 집엘 다녀갔다. 아이들은 차례를 모신 후면 바로 돌아가야 했기에 어느 집이나 비슷할 테지만 우리도 차례 음식을 준비하느라 꼬박 하루를 온 가족이 음식 장만으로 분주했다. 한 참 바쁘던 도중 ‘아야, 아야 하게 하지 말고 팍팍 주물러라’는 큰 아들 아이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니 소금 뿌린 도라지를 주무르고 있던 작은 아이가 ‘뭐야, 꼭 할머니같이’라며 제 형을 보고 같이 웃고 있었다. 알다시피 제수는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데 다 종류도 여러 가지라 예전부터 돌아가신 시어머님은 도라지 숨죽이기, 두부 짜기 같은 손아귀 힘이 필요한 일들은 며느리들 제쳐두고 손주나 아들들을 불러 시키셨는데 주무르는 아이가 요령이 없어 제대로 팍팍 주무르지 못하고 주물럭거리기라도 할 때 면 ‘에구, 도라지가 아야, 아야 하겠다’고 혀를 끌끌 차시며 웃으시던 걸 기 억해 낸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저희들끼리 할머니의 생전 어록(?)들을 뒤적여 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음식을 하는 내내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푸근한 마음들이 되었었다. 잘 주물 러야 한다, 힘을 팍팍 써라. 그 어떤 지적과 조언보다 도라지를 잘 주무르게 하는 확실한 지침이 돼주던 한마 디 말! 같은 말도 듣는 사람 편하게, 또 조금 완곡하지만 유머를 담이 오히려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어머니의 요령과 포용이 그리운 날!
일선의 귀한 후배님들아! 부족한 대로 선배들이 뒤에 있으니,
‘세상이 아야, 아야 하도록, 한 판 제대로 해 보시게나~’
신현자 (전 경북지부장 / 재활심리학 박사 / 라온재심리상담연구소장 /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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