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2월호/363호] 지부지회소식_전남지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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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2-07 11:22 조회1,041회 댓글0건본문
내가 사는 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
안녕하세요 전남지부입니다. 2021년 전남지부의 설렘 가득한 역사기행을 소개합니다.
전남지부는 지난 11월 역사기행을 떠났습니다. 남도의 맛과 멋 그리고 흥의 고장 장흥으로 말입니다. 장흥은 전남의 중심부에 있으며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의향(義鄕)의 도시입니다. 흔히 장흥의 꾸밈말은 의향과 더불어 정남진이라 일컬어집니다. 정남진은 서울의 정남 쪽 바닷가입니다. 맑은 물과 푸른 숲을 자랑하는 장흥은 남쪽의 가장 따뜻한 지방으로 봄의 길목에서 아름다운 봄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정남 쪽 끝에서 내달려 시원하게 일직선상에 있는 북의 중강진까지 남북통일을 염원하게 하는 곳입니다.
전남지부는 지속적으로 해마다 역사기행을 기획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하지 않습니까? 더더구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 이러한 역사기행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쉼의 공간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 이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나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만납니다.
전남지부는 2021년 11월 늦은 가을, 장흥이 품은 역사 이야기를 독립의 길, 문학의 길, 항쟁의 길 세 갈래로 나누어 떠났습니다. 모두 코로나 19로 움츠려 있던 탓에 그날의 출발은 소풍 가는 날 아이처럼 셀레기도 했지만, 걱정이 반이기도 했습니다. 전남지부 집행부들이 톡방에서 서로의 출발 소식과 함께 각자 여행 일정들을 공유하고 소통했습니다. 서로 만난다는 것,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이 이리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전남지부의 5개 지회, 이백여 명이 각각 자신들의 공간을 떠나 서로 함께 공유하자고 약속한 공간, 장흥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번 기행의 기획 의도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전남지부 사람들을 만나 저마다의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정남진 장흥, 그곳을 탐험했습니다. 그러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공간을 찾아갔습니다. 인간과 시간 그리고 공간의 역사기행, 그곳에는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이 묻어났습니다. 특히 이번 장흥역사 기행에서 우리는 남도의 정신, 자유와 정의를 향한 불굴의 저항정신과 맞닥뜨렸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억불산 기슭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입니다. 그곳에서 반가운 지부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참 오래된 인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우리는 교육 운동을 함께하는 동지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수줍은 미소를 지어 서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함께 뜻을 나누는 동지가 되어주겠다고 말입니다.
자욱한 안개와 키 큰 나무들이 아침 해를 가리는 편백숲 우드랜드에 올라 흩날리는 편백의 향 피톤치드를 들이킵니다. 남도의 산에서 이슬이 맺힌 시들한 풀잎이 사람들의 눈웃음으로 파르르 떨렸습니다. 우리는 남도의 품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서 있는 이 공간을 이해하고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아이 어릴 적 품에 안고 토닥토닥 젖을 먹이며 엄마의 숨소리를 들려주고 엄마의 젖 내음을 맡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이제는 엄마의 온화함 같은 남도의 품을 아이들에게 안겨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품이 바로 이 아이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 이곳의 역사이며 문화라 생각했습니다. ‘바로서는 학부모, 우뚝서는 아이들’이라는 우리의 슬로건이 생각났습니다.
산책을 마친 우리 식구들은 장흥의 자랑 토요시장에서 장흥의 9미 중 하나인 매생이 떡국을 먹었습니다. 맑은 장흥의 굴과 매생이를 넣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습니다. 그리고 떡국의 그 쫀득함은 남도의 그 맛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함께 공감하는 그 맛입니다. 남도의 맛과 빛깔을 간직한 다양한 반찬들은 그야말로 식도락이었습니다.
혹시 아세요? 전남 장흥에는 해동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신 국내 유일한 사당입니다. 1955년 10월 27일 전남 장흥군 만수사 죽산 안씨 사당 부지 내에 조성되었다가 2000년 안중근 의사 순국 90주년을 맞아 신축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독립을 향한 의지를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을 보고 계단을 내려오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님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집행을 앞둔 아들에게 쓴 편지글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애끊음으로 전남지부 사람들과 아이들은 맘껏 울어버렸습니다. 아직 우리 민족의 혼이 우리 몸에 스멀스멀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머리에서 시작한 배움이 가슴에 여운을 남기며 그 전율이 발까지 도달하는 여행. 아, 얼마나 좋은 여행입니까?
우리 전남지부 식구들은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집결하였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의 부분입니다.
구한말, 인민(people)들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간 봉건 집권층과 제국주의의 시커먼 속을 드러낸 청과 일본제국주자들의 억눌림에 살고자 봉기했던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을 공감해 보는 곳 동학농민혁명기념관입니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이며, 대규모 농민군이 참여한 최후의 격전지로 농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던 장흥 석대들에 위치합니다, 동학농민군들은 정읍 황토현, 장성 황룡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며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청과 일제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지배야욕을 드러낸 미련한 당시 집권자들은 자신의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우금치에서 민중들은 스러져갔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겨졌던 그때, 남도의 땅 장흥 석대들에서 다시 횃불이 타올랐습니다.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민중들은 죽음으로 대항했습니다. 전남지부 사람들은 그곳 장흥 석대들에 모여 그들의 정신을 기리며 단체 사진을 추억으로 남겼습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 그 속에서 지적인 상상력을 품은 역사와 문화를 만났습니다.
그곳의 산과 들 그리고 거리와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역사와 문화를 들려주었고 그 울림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정체성은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항상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줄 것을 서로 약속하는 역사기행이었습니다.
박영실 (광양지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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