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1월호/360호] ‘참교육실천을위한경남민주학부모회’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의 출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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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11-05 14:35 조회1,196회 댓글0건본문
1987년은 대한 민국뿐만 아니라 김영만 개인에게도 참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해였다. 마산에서 노동, 시민 학생 등 지역 민주역량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민간도서관 책사랑이 만들어졌다. 김영만은 이 문화공간에 투자자 중 한 사람으로 당시 책사랑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사랑을 애용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인 교사협의회의 교사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88년 어느 날, 책사랑 휴게실에서 안종복, 이인식 등 몇몇 교사들이 차를 마시며 전교조 설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동석하게 되어 이런 조언을 했다. “만일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 면 제일 무서운 적은 현 정권과 교육 당국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노동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공장에나 가라는 소리 예사로 하잖아요. 무엇보다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걸핏하면 단체행동권을 행사 한답시고 학교 수업도 거부할지 모른다고 염려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교조를 비난하지 않을까요? ”
김영만은 당시 ‘풀뿌리문화연구회’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노동자들과 늘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에 교사들 중 누군가가 “그러지 않아도 바로 그걸 걱정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럴 때 전교조를 만드는 교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학부모 단체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나오는데 “선배님, 선배님이 나서서 학부모 조직 좀 만들어 주세요”하며 김영만을 따라 나오며 진지한 표정으로 간청했다. 안종복이라는 교사였다.
그 당시 세 아이가 초·중·고에 다니는 학부모였고 당시의 교육정책과 교사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많았기에 교사의 참교육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학부모회는 이름 그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적절한 비율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들 이야책사랑 회원들과 지인 중에서 같이할 사람들이 많았지만 문제는 어머니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책사랑 근처에 있는‘사랑의 전화’ 김인자 소장을 찾아가 한번 의논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 말을 듣는 즉시 김영만은 김인자 소장을 찾아가 학부모회를 같이 할 만한 어머니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며칠 뒤 ‘사랑의 전화’ 사무실에서 정미라, 이연숙 두 어머니를 소개받고 두 차례 그곳에서 만나 학부모회를 만들어 보자는데 합의했다. 이때가 88년 7월 경이었다.
학부모 단체 창립준비모임 회의장소는 아버지 모임을 했던 책사랑 회의실과 정미라 학부모가 회원으로 있는 경남여성회 사무실을 번갈아 이용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번쯤 하는 회의라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창립준비모임의 참석자는 10~12명 정도였고 학부모회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숫자를 반반정도로 맞추었다.
학부모 모임의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홍보물을 제작할 때도 언제나 연락처 전화번호는 책사랑과 경남여성회 전화번호(45-7844, 44-9009)를 나란히 병기했지만 편의상 두 단체에 양해를 구했을 뿐 단체연대 사업은 아니었다. 단체 명칭은 창립 전이다 보니 가칭으로 처음엔‘민주학부모회’로 했다가 뒤에는 ‘참교육실천 학부모회’라고 썼다.
학부모회 창립 준비회의를 어디에서 하든 창립 주체는 특정 단체가 아니라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학부모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모임이었다. 토론회건 간담회건 아니면 홍보물 배포 활동이건 모든 프로그램은 순전히 준비모임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된 일을 실행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참고할 사례가 있거나 조언을 받을 전문가도 단체도 없었다. 오히려 전국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학부모들에게 마산의 학부모 모임이 좋은 사례가 되었다.
드디어 학부모도 교육의 한 주체임을 선언한 전국 최초의 학부모회인 ‘참교육실천을위한경남민주학부모회’가 1989년 3월 24일 마산에서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이날 공동대표로 김영만, 정미라 두 사람이 선출되었다. 이어서 1998년 9월 22일,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 16개 도시에 지부를 가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가 창립되고 김영만은 초대 회장이 되었다.
마산에서 학부모회가 창립되고 10년이 지난 후, 모 여성단체가 자신들이 마산 학부모회 창립을 했다고 주장해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참교육학부모회 마창진지회 임경란 지회장이 항의하여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다시 8년이 지난 2007년, 학술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이 학부모회를 창립했다고 발표한 사건이 생겼다. 이때는 아예 자신들의 기록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다.
그 힘들었던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함께 가야 할 어려운 일들이었다. 누구라도 역할을 한 것이 있으면 한 것만큼 평가하고 평가받으면 된다. 당사자들이 아직 건재할 때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김영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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