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호/380호] 교육현장이야기_우리는 인권을 배우고 있습니다 - 전북 무주초 인권 교육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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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8-07 14:56 조회243회 댓글0건본문
우리는 인권을 배우고 있습니다
- 전북 무주초 인권 교육 -
인권, 그 길은 길었다
2018년 시작한 ‘혁신 학교’ 이전부터 이른바, ‘민주적인 학교’는 착실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교사들과 토론하며 같은 한 표를 던지는 관리자가 있었고, 교사들은 동료의 새로운 시도를 시기하지 않고 응원하며, 효율이 아닌 효과를 위해 토론할 수 있었다. 즐거운 학교를 직접 만들어가는 학생회의 모습은 전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었고, 교사와 협력하여 아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학부모가 있었다. 학교 곳곳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었다. 다만, 수업으로 실천되지는 못했다.
2019년 12월 5일, 세 차례에 걸친 교원들의 열띤 토론 끝에 민주시민교육을 우리 학교의 중점에 두기로 결론지었다. 이듬해부터 책을 읽고, 전문가를 불러가며 공부했다. 어떻게 내용을 구성하고, 어떤 방법을 취할지 토의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본격적으로 ‘전학년 민주시민교육 주제 중심 통합수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의사결정, 미디어, 환경, 노동 등 교사가 특정 주제를 선택하고, 여러 교과와 엮어가며 다채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갈수록 학교 민주주의는 나날이 발전했지만, 민주시민교육은 곧 난관에 부딪혔다. 학교는 매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어디에서 말로만 듣던 민주시민교육을 당장 수십 시간의 수업으로 구성하여 실천해야 했다. 또한 각 학년에서 자율로 내용을 구성하다 보니 내용이 중구난방이었다. 이전 학년에 배웠던 특정한 주제는 누락되기도 했다. 그 해 수업하는 교사에게는 새로울지언정 아이들에게는 진부했다.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배움이 되려면 지속성과 체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2021년, 우리는 ‘학교 교과목’을 만들기로 했다. ‘학교 교과목’은 몇 해 전부터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추진 중인 학교 교육과정 혁신의 일환으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해당 학교의 필요에 따라 주제와 내용을 구성하고, 국어, 수학 등 일반 교과처럼 수업 시간을 배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다만, 민주시민교육은 너무 방대하기에 그 전체를 다룰 수는 없었다. 우리는 논의 끝에 ‘인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권’으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디어, 노동, 환경 등 다양한 민주시민교육의 영역을 다뤄보니, 그 기저에 인권이 자리하고 있음을 구성원 모두가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 형식 자체로 내용을 담보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다수결이 아니라, 인권을 향해가는 대화와 타협이다.
2022년, 우리는 다시금 공부를 시작하며 인권 교육의 기틀을 잡기 위해 논의를 이어갔다. 가장 어려운 점은 학년별 내용 구성이었다. 권리 목록, 역사적 사건, 사회적 이슈 등 주제로 설정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고민을 이어가던 중 한 선생님께서 ‘사회적 약자’를꺼내들었다. 맞는 말이다. 애초에 인권은 약자의 주검 위에 핀 꽃이다. 그렇게 이어진 연구와 실천 끝에 나름의 체계를 갖춘 ‘민주시민교육 <인권>’ 학교 교과목을 완성했다. 혁신 학교를 시작으로 5년, 드디어 ‘인권’에 도착했다.
인권, 아이들은 배운다
나는 5학년 아이들과 두 해를 함께 보내고 있다. 그래서 작년에는 노인 인권, 올해는 장애인 인권 수업을 운영하였다. 수업은 동화책이나 영상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만날 일이 많지 않다. 만나기는 하되, 그 사람을 약자로 인식할 만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만났다. 작년에는 시니어 클럽과 노인 복지관과 연계하여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뵈었다. 올해는 점자 체험을 겸해 시각 장애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영상이나 책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공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나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위해 직접 나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 분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 주변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여 지자체에 목소리를 내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작년에는 무주군수를 초빙하여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을 제안했다.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육이를 나누어 드리자.’는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고무되는 아이들의 표정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어떤 아이들을 ‘어르신들에게 반갑게 인사드리자’는 캠페인을 읍내에서 벌였다. 당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인지라 푯말을 들고 외치면서 수시로 품에 넣은 핫팩에 손을 비볐다.정작 추위를 물리친 것은 핫팩이 아니라 지나가는 시민들의 격려였다. 고생한다는 한마디, 치켜드는 엄지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커졌다. 날씨는 추울지언정 아이들의 얼굴은 따뜻했다.
올해는 장애인 인권을 위한 배리어 프리 프로젝트(Barrier-free project)를 운영했다. 마을을 답사하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이번에는 무주군청 장애인복지팀장을 초빙하여 아이들이 의견을 건넸다. 더불어 무주군에서 실시하는 장애인 복지 사업을 소개 받았다. 아이들은 지자체의 다양한 노력을 살펴보며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권, 교사도 배운다
사실 인권 수업을 하면서 교사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이번 장애인 인권 수업만 해도 그렇다. 처음 단원명이 ‘장애, 그냥 좀 다른 것뿐이야.’였다. 다르니까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동화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장애는 조금 더 불편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기에 유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자칫 수업을 할수록 이들을 점점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기 쉽다. 다른 ‘멀쩡한’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절망 속에 파묻힐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인권 회복(보호) 활동은 저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시혜가 되어 버린다. 인권 문제의 사례 속에 등장하는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이주민,노동자, 학생 모두 마냥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당당한 자기 삶의 주체이며, 우리와 그들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 활동도 ‘베품’이 아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First They Came)가 이야기하듯, 우리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훈련이다.
인권, 배움은 계속된다
인권 교육은 계속 될 것이다. 작년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빚은 학교 교과목이 올해로 이어졌고, 올해 구성원들 또한 힘을 모아 다듬어 낼 것이다. 그리고 내년 구성원들에게 바톤을 넘겨 줄 것이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학부모의 동의와 지지다. 학교 교과목은 국어, 수학같이 필수적으로 다뤄야 할 교과가 아니다. 만약 우리 학부모님들께서 동의하지 않으셨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 학교 교과목 심의를 받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학교와 발을 맞추기 위해 학부모도 인권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학부모 위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삶 속에서 인권을 배우기 위해 학교와 가정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학부모를 위한 아동 인권 연수’를 이번 학기에 실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춤출 수 있게 칭찬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 학교를 가꿔가는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우철 (교사)
작년 ‘노인 인권’ 수업 때 했던 무주반딧불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시니어 클럽에서는 몸이 불편해 일자리를 얻기 힘드신 어르신들께 다양한 일을 하는 대신 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저희가 만나본 할아버지께서 노인이 되어 느낀 불편함을 이야기해 주실 때 책과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보다 훨씬 잘 느껴졌습니다. 어르신께서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 돈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주군 군수님께 ‘어르신께서 의료원에 가실 때 병원비를 할인하는 제도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제 발표가 끝난 뒤, 군수님께서 피드백을 해 주셨는데, 저희가 제안했던 내용은 이미 실행 중이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더 잘 알아보고 제안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친구가 제안했던 ‘어르신께서 외로움을 느끼시지 않도록 다육이를 나누어 드리자.’는 제도는 군수님께서 “생각해보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우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학년 장애인 인권 수업 때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동화책을 읽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나톨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는데 냄비, 즉 장애의 불편함을 갖고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아나톨이 힘들어하자 아주머니께서 주머니에 있던 자기의 냄비를 꺼내며 “나도 있다”는 말을 할 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모든 사람도 자신만의 불편함이 있다는 점에서 나의 불편함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의 불편함은 안경이었는데, 친구들이 ‘아주머니처럼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며 자기들만의 대책을 말해줄 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음 수업은 배리어 프리 프로젝트였습니다. 배리어 프리는 엘리베이터 점자처럼 장애인도 우리처럼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인데요, 무주는 아쉽게도 배리어 프리가 필요한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안을 드리기 위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직접 안대로 눈을 가리고 흰 지팡이에 의존해 길을 건너는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보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많이 무섭고 공포스러웠습니다. 저희가 답사에서 찾은 문제점은 점자 블록이 없다는 점입니다. 점자 블록은 시각장애인분들께서 길을 건너게 해주는 배리어 프리인데요, 무주에 있는 길 대부분에는 점자 블록이 없어 장애인 분들께서 사고를 당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안 당일, 제가 직접 만든 PPT를 가지고 무주 군청 장애인복지팀장님께 발표를 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생각해 보신다고 답변을 받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안이 끝난 후 며칠 뒤 부모님께 인권 수업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칭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2학기 수업은 외국인을 주제로 한다고 해서 과연 어떤 수업을 할지 기대됩니다.
학생 (5학년) 최현우
인권 교육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으로 공감하려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인권 교육을 통해서 노인과 장애인을 이해하고 공감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해야 할 때와 할 수 있을 때 실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인권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한 번 생각 해보고, 이해하려고 했었고 앞으로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학부모 이선주
엄마로서 아이의 무주초등학교 생활은 참 만족스럽다. 학생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는 다양한 주제를 선생님과 학생들이 토의와 체험을 통해 배운다. 아이는 지금도 몸소 올바른 인성과 작은 배려를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유치원 시기부터 학생들은 누구나 장애 이해 교육을 받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선 아이들에겐 내 문제가 아니고, 매년 일회성 장애 체험과 듣는 교육은 크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큰아이가 4학년 민주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노인 인권을 주제로 러닝 페어(Learning Fair, 학습잔치)를 한다고 했을 때도 지금껏 이루어진 비슷비슷한 인권에 대한 생각을 버무려 아이들의 발표력 신장에 초점을 둔 행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노인 분들과 대화하고 노인 체험을 통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고민해서 군수님과 부모 앞에서 서투르지만 직접 PPT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실제적인 경험이 우리 아이들을 많이 성장시키겠구나 싶었다.
올해 또다시 사회 인식 개선이 필요한 장애인 인권에 대한 러닝 페어를 한다는 이야기에 기대감이 생겨 아이가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시로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생각을 묻고 장애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정보를 스스로 찾으며 그동안 비장애인에게 익숙한 환경이 다양한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겐 불공평함을 깨닫고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도 그냥 넘기고 무관심했던 시간을 반성하게 되었다.
노인 인권과 장애인 인권을 공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주체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인 우리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학부모 허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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