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호/379호] 사설_학벌주의 사회가 만든 변별력(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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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7-10 15:41 조회314회 댓글0건본문
학벌주의 사회가 만든 변별력
지난 6월 15일 대통령의 ‘킬러문항’ 발언 이후 지금까지 참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특권 교육은 당연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야당 국회의원과 ‘수월성 교육’을 주장했던 여당 국회의원의 대사가 서로 바뀌었고, 사교육 기관이 해야 할 ‘준킬러 문항 등장, 물수능 우려’ 등의 주장을 대학 교수와 학교 교사가 대신하고 있다.
대학입시를 담당할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을 4개월 여 남겨둔 지금도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대통령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수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일타강사의 소득과 탈세 여부보다 9월 11일 수시 원서에 NEIS가 제대로 학생의 대입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교육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학교 현장을 제대로 돌아가게 지원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6월 29일자 노컷뉴스에 ‘학생 80%가 킬러문항에 관심 없다’는 기사가 게재되었지만 여전히 ‘학생·학부모 대혼란’이라는 여론 몰이가 우세다. 게다가 야당 정치인까지 정쟁의 이슈로 사교육 기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학생들을 끝없는 문제풀이 수렁으로 밀어넣고 학부모를 비싼 사교육으로 등 떠미는 킬러문항은 변별력이 탄생시킨 괴물이다. 시기와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없애는 게 백번 옳다. 변별력은 최상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다른 계층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고액 과외를 받고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 학벌로 출세한 권력층이 강력하게 주장해 온 게 바로 변별력이었다.
변별력은 선발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기업이 직원을 채용하듯 각 대학에서 중도에 이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졸업할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데 온 나라가 대학이 할 고민을 대신해서 하고 있는 형국이다. 수능은 원래의 목적처럼 대학 수업을 수학할 능력을 검증하는 정도의 자격고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30년 간 줄세우기 경쟁교육 심화, 사교육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수능 폐지를 결단해야 한다.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문정부 때의 정시 확대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이번에야말로 이념을 넘어 과감한 입시 제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한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극소수 학생에게 해당되는 킬러 문항은 없애면서, 자사고 · 외고 · 국제고(아래 ‘특목고’)는 존치하겠다고 한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하면서 특목고를 존치한다는 건 대놓고 특권층을 양성하겠다는 메시지다. 고교학점제 시행을 번복할 수 없으니 고교 서열을 공고히 해서 특목고 학생들이 그대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절대평가를 전제로 하는 고교학점제 체제에서는 특목고 쏠림 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고교서열화가 초등교육부터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지금도 초등 학원에는 의대 입시반뿐만 아니라 특목고 반이 있고 경쟁이 치열해 대기자가 줄을 서 있는 상황이다.
자사고 등 특목고 존치는 특권층을 위한 입시의 공식적인 수단이자 발판이다.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는 대학 서열과 학벌주의에 있다. 대학 서열이 해소되지 않고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차별받는 현실에서 교육 개혁은 답이 없다. 대학 서열 해소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노동, 저출생 등 범정부 대책이 필요하다.
‘BTS’와 롤 게임의 전설인 ‘페이커’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입시, 사교육, 변별력의 쳇바퀴를 맴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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