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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월호/362호] 교육현장_나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은 바보다(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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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1-05 08:56 조회1,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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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은 바보다

 

아이가 100일쯤 되던 무렵, 평소처럼 한쪽 팔에 잠든 아이를 안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잠든 틈에 얼른 기저귀, 물티슈, 신상 장난감 등을 주문해야 했다. 한꺼번에 결제하려는데 ‘카드 한도 초과’ 메시지가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우리 부부의 카드는 매달 역대 최고 지출을 갱신하고 있었다. 세 식구의 보금자리를 찾아 감행한 이사, 혼수보다 더 복잡한 아이 가구와 용품들, 임신 출산 과정의 병원비, 산후조리 비용…. 수입이 많진 않아도 그동안 둘이 살기에 충분했고 아이를 키우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별일은 아니었다. 현금으로 결제하거나 다른 카드를 써도 됐다. 

나중에서야 자각한 거지만 그 당시 나는 산후우울증이었다. 하루에도 몇 십 번을 이유 없이 울던 나에게 ‘카드 한도 초과’ 메시지는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서막과도 같았다. 남편은 필요한 것들을 다른 경로로 결제하고 여러 희망적인 말들로 나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폭풍이 지나간 그날 밤, 아이 옆에 누워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해마다 보는 내용이라 낯설지도 않았다. 별생각 없이 읽던 중 ‘정부는 출산장려를 위해 임산부와 출생아 지원금을 지급하였다’는 문장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것도 산후우울증의 증상이었을까, 생전 처음으로 뉴스에 댓글을 달았다. “아기 키우는 엄마입니다. 현재의 정부지원금으로는 저출산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동복지는 턱없이 부족하고, 낳으라고만 하고 키우는 건 오로지 엄마 몫인데, 정부는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고 출산율을 운운해야 할 것입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댓글에는 각각 500건이 넘는 찬성과 반대, 500개에 달하는 대댓글이 달렸다. 동의한다며 아이를 잘 키우라는 덕담도 많았고 아동복지는 지금도 충분하다, 이 정도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다 등 반대의견도 많았다. 당연히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내가 참기 힘들었 던 건 ‘너 같은 게 맘충 된다’, ‘역시 한녀(한국여자)다’, ‘지가 낳아놓고 돈 주라 징징대냐’, 그 밖에 더욱 수위 높은 공격들이었다. 손에 땀을 쥐고 대댓글을 읽다 불현듯 나의 계정에 아이 사진이 설정되어있는 것이 떠올라 바로 댓글을 지웠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안하고 답답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사람은 IQ가 두 자리일 것이라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바로 그 IQ 두 자리의 장본인으로서 나는 십분 공감한다.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새끼를 낳았고 그 결과 우리는 홀몸일 때보다 사회에 적응하고 진화하기가 100배는 힘들어졌다. 내가 떡진 머리와 아기의 침이 묻은 옷을 입고 기저귀 최저가 핫딜을 검색하는 동안 주변의 싱글 친구들은 월급도 오르고 차도 바꾸고 멋지게 입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모아놓은 돈도 커리어도 없는데 너무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았나,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취직했는데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최교수의 말대로 나는 계산에 실패한 것 같았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나도 육아 고수가 되어가던 어느 날, 작은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아이를 데리고 미팅을 갔고 그날 사무실 책상을 다 헤집고 다니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이후 감사하게도 재택근무를 제안해주었다. 오전엔 어린이집에 보내고 밤엔 아이를 재우고 나서 일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입소하자마자 한 달 넘게 감기를 달고 살았다.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나까지 감기에 옮았고 온종일 칭얼거리는 아이와 전쟁을 치르다 밤이면 장렬히 전사했다. 집에서 노트북을 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진척되지 않는 업무에 아이 핑계는 대고 싶지 않았다. 내 능력의 한계일 뿐 아이와는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나조차 자꾸 아이 탓을 하고 있었다. 빨리 재우고 일해야 하는데 밤 11시가 되도록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결국 언성을 높이고, 어린이집 안 간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고 미안해서 노트북 위에 엎드려 우는 날만 늘어갔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곤란하다.’ 『82년생 김지영』 속 남자 의사의 대사가 떠올랐다. 

최재천 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강의에 갔다가 당신은 마누라도 없냐는 말을 듣고 강의 평가 테러까지 당했다고 한다.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직장에 가면 엄마는 뭐하냐는 말이 반드시 따르지만 직장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에게 아빠는 뭐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최교수님이 당한 그 정도의 수준, 그 정도의 취급은 그 시대의 한계가 아니라 여전히 워킹맘들 대부분이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하면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말 역시 동의하지 못한다. 엄마의 육아참여는 당연한 거고 아빠의 육아 참여는 저출산을 해결하는 대단한 일인가? 당연한 걸 지금에서야 조금씩 하게 된 것을 반성해야 할 뿐이다. 

 

앞으로도 출산율은 오르지 않을 거다. 더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저출산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최교수의 분석대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똑똑하게 계산한다. 개인의 행복이 가장 우선일 수도 있고 일자리는 적고 물가는 오르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수의 말대로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은 낳지 말라 해도 낳을 것이다. 돈 문제와 상관없이. 

진짜 문제는 낳고 나서 시작된다. 직장에서는 아이 엄마를 선호하지 않고, 외벌이만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엔 주택가격은 판타지에 가깝고,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은 기관을 전전하고, 기관에서는 끝없이 아동학대가 일어나고, 아이를 해하는 미친 범죄자들은 너무 많고, 그런 것들이 처벌도 제대로 안 받고 다시 아이들 주변을 떠돌고. 이것이 내가 정부의 출산율 타령을 비판하는 이유이다. 이미 태어난 아이는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아이를 또 낳으라고?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출산지원금도 아빠의 육아 참여도 아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 이 아이들이 자라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을 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아이는 낳으면 저절로 큰다’면서 막상 아이를 키우며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엄마의 책임으 로만 미루는 사회, 아이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말을 한낱 맘충이 징징대는 것으로 듣는 세상에서는 절대로 아이도 엄마도 행복하게 성장할 수 없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우리집 카드는 한도가 초과되었다. 나는 아직 사회로 나가지 못했고, 여전히 집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아이를 들쳐업고서 언제 오냐며 남편을 들들 볶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확실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그 결과 나는 사회적으로 퇴행했으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얻었다. 완벽한 집, 좋은 옷보다 그저 엄마 아빠랑 놀이터에 가는 걸 제일 좋아하는 우리 아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살면서 제일 바보 같고 제일 후회 없는 선택을 한 대가이다. 

 

조이유 (광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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