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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12월호/361호] 엄마의 단조로운 하루에 보내는 위로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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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12-10 14:47 조회1,0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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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단조로운 하루에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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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에 대해 불행한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근 비혼과 1인가구, 딩크족 등 결혼 및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생활양식이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인륜지대사요, 굳건한 보편적 가치로 여겨진다. 

 2년 전 나 역시 출산을 통해 숭고한 가정을 이루는 관문을 통과하였으나, 그 다음의 일상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우울했다. 하루하루가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고난이었다. 종일 울다 잠든 아이를 안고 오늘 처음으로 내다보는 창밖은 그새 어두워져 있는데 그 어둠에 홀려 걷잡을 수 없이 불길하고 충동적인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감정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나를 문제있는 엄마로 볼까 봐 남편에게조차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현대의학은 출산 후 85%의 여성들이 ‘산후우울증’을 겪는다는 통계를 밝혀주었으나 정작 산후우울증을 겪는 엄마들을 향한 현대인들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가령 직장생활이 힘들어 때려치우고 싶다고 하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겠지만, 육아가 힘들어 도망치고 싶다는 엄마의 하소연에는 의아한 표정과 크고 작은 질책이 이어질 것이다. 엄마라는 위대한 이름 아래 육아노동자(?)들은 얼굴만 찌푸려도 나쁜 엄마가 된다. 

 <툴리>의 ‘말로’ 역시 스스로 좋은 엄마가 아니라 칭하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세 아이의 엄마다. 펑퍼짐한 옷으로도 세 번의 임신이 남긴 흔적은 가려지지 않고 어디서든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당연히 앞섶은 헤져있다. 빗을 시간조차 없었을 머리카락과 눈가를 점령한 다크서클, 그 사이를 간신히 뚫고 나오는 지친 눈빛. 그런 말로 앞에 ‘당신을 돌보러 왔다’며 스물여섯 살의 야간 보모 ‘툴리’가 등장한다. 낙관적인 가치관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20대 청춘 툴리의 돌봄으로 말로는 점점 생기를 찾아간다. 이전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자주 웃으며 남편을 마주한다. 영화를 보는 이들 모두 이때까지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말로의 남편이 그랬듯. 

 툴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무너지다 못해 사라져가는 자신을 지켜내려고 스물여섯 툴리를 붙잡고서, 결국엔 언제나처럼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해온 말로를 보며 나는 감히 동정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고 그저 오래 울었다. <툴리>는 온 세상이 최고의 행복이라 칭송하는 양육의 과정 안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느끼는 상실감을 그린다. 말로가 겪는 상황 설정은 과장된 듯 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하이퍼 리얼리즘일 뿐이다. 실제 자신의 경험담으로 영화를 만든 <툴리>의 작가 디아블로 코디를 비롯하여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드는 산후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다.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늘 따듯한 미소를 유지하며 자식을 위해 한없이 희생하는... 그런 비현실적 장면을 태초에 모성애의 이데아(Idea)로 포장한 이는 누구일까. 사회가, 타자가 주입한 모성애의 이름 아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이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 왔을까. 그렇게 울음을 참아내고 자신을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진 엄마 들을 향해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하는 세상은 얼마나 야박한가. 

 외모도 추해지고 꿈도 없어진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는 말로에게 툴리가 말한다.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꿈을 이룬 거예요. 그렇게 싫어하는 단조로움, 가족에겐 선물 같은 거예요. 매일 일어나서 가족에게 같은 일을 해 주는 것. 삶도 심심하고, 결혼도 심심하고, 집도 심심하지만, 그게 멋진 거예요. 그게 대단한 거예요.” 위대한 모성애보다 그저 툴리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것만으로 엄마의 단조로운 하루는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오늘 밤에도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자책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엄마들에게 툴리의 위로를 보낸다. 

조이유 (광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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