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5월호/366호] 기획특집_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며 (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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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5-06 14:52 조회916회 댓글0건본문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며
올해로 어린이날이 100주년을 맞습니다. 독립된 인격을 가진 존재인 어린이를 사람으로 대우해야한다는 천도교 소년회의 선언이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창립자 에글란타인 젭이 아동의 권리와 보호에 관한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날마다 온 세계의 수없이 많은 아동이 그들의 발달과 성장과정을 방해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어른과 사회의 책임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1920년대 초,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아동권리는 태동하였습니다. 한 세기 후 세이브더칠드런은 2021년의 세계를 아동기를 갖기에 가장 힘든 곳으로 규정하였습니다.1)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동 권리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국제사회의 경고 또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동은 100년 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숙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디지털 환경과 같은 새로운 위험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외침이 아이들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우리는 교육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절박한 목소리도 있었습니다.2) 한 세기 전 아동의 발달과 성장을 귀히 여기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선언이 잘 이어지고 있는지 우리 어른과 사회가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세대 새로운 사람’이라는 방정환 선생의 말처럼, 팬데믹 이후 세계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가질 권리: 기후위기는 아동권리의 위기입니다
기후위기의 역설은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점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쓰는 화석연료의 양은 주요 선진국 사람들에 비해 매우 적지만 기후변화로 살 곳을 더 많이 잃고, 자원을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도시 사람들보다는 농어촌 지역 주민들이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이래 배출해온 탄소의 양은 적지만 그동안 인류가 배출 해온 탄소로 변해버린 지구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아동 역시 기후위기의 역설 속에 놓여있습니다.
과학적인 연구도 지금의 아동이 마주할 고통스러운 운명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브뤼셀 자유대학, 취리히 공과대학이 공동 진행한 연구에서 2020년에 태어난아동은 조부모 세대인 1960년생에 비해 평생 동안 2배 더 많은 산불과 2.8배 많은 흉작, 2.6배 많은 홍수, 6.8배 많은 폭염을 겪게 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만 놓고 본다면 폭염은 평균 8.2배까지 늘어납니다. 더 이상 기후변화를 먼 나라 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폭염과 미세먼지로 실외활동이 줄어들 때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을 키워갈 기회가 줄어듭니다. 이상 기후가 잦아질 때 아이들은 전해질 불균형이나 발열, 호흡기 질환, 신장 질환 등 건강 문제를 겪을 위험이 어른보다 높습니다. 냉난방을 여유롭게 할 수 없는 집이나 학교의 아이들은 학습 능력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아동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우리는 아동의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동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아동은 4명 중 1명에 불과하고, 참여해 본 경험이 없는 아동 중 63.9%가 ‘관심이 있으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하며’, 약 20%의 아동은 참여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나 학업 시간과 겹치거나 성인 중심의 활동이라 참여하기 어려웠다고 답했습니다.3) 2 021년 세이브더칠드런이 기후위기에 대한 아동들의 정책제안을 모아 국회를 찾았을 때 한 의원실에서 “탈석탄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에 관심을 가져왔음에도 기후위기를 아동권리의 문제로는 바라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비롯한 국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도 아동에 대한 고려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앞선 세대들의 만행으로 기후위기를 살아야 하는 게 억울할 것입니다. 다행이라면 이 운명이 마냥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연구에서는 각 나라들이 지구의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하로 제한한다면 앞으로 늘어날 폭염을 45%까지, 가뭄은 39%, 홍수는 38%까지 낮출 수 있다고 밝힙니다. 이 연구를 소개한 ‘기후위기 속에 태어나다’ 보고서를 통해 칠레의 청소년 로라가 한 말은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유효합니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어른들, 특히 정책 입안자들의 협력과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위험에 처해있으며, 우리에게는 문제도 있지만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4)
안전할 권리: 디지털 세상 속 아동권리 실현을 위해
#1. E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포텐독 시즌 2 일부 회차에 몰래 촬영한 영상으로 협박하고 영상을 유포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이 내용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를 의결했습니다.5)
#2. EBS의 대표 캐릭터 펭수가 출연한 카카오TV와 유튜브 채널 ‘김계란의 찐서유기’에서 성인이 펭수를 가격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또 다른 성인은 펭수에게 “빨리 안 하면 맞아(?)”라고 말합니다. 이 콘텐츠는 별도의 연령 고지나 제한없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3. 채널A 육아 예능 ‘금쪽같은 내새끼’는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이 가슴을 긁는 사례를 방영했습니다. 해당 방송 영상은 포털사이트 다음(Daum) 메인 페이지에 성적 묘사를 한 제목으로 수 시간 노출되었습니다. 채널A와 다음에 가해진 제재는 없었습니다.
이상은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이 미디어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폭력 재현, 폭력에 대한 묘사 방식, 2차 가공물에서의 아동의 성적 대상화를 문제 삼은 사례들입니다. 각 사례의 아동권리 침해 정도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사후 조치가 제각각인 것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이용률이 97.2%로 TV를 앞지를 정도로6) 아동의 삶에서 디지털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가 미디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온 여러 논의와 장치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그 효력을 크게 잃습니다.
지난해 3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논평 25호7) 에서 ‘폭력 및 성적 콘텐츠, 사이버공격 및 괴롭힘, 도박, 성착취와 학대’ 등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기업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남용하거나, 이를 부추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의무를 다’ 할 책임도 국가가 집니다. 이를위해 국가는 법률, 규제 및 정책의 개발, 모니터링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2에 대해 EBS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펭수가 타 (유튜브)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한 경우로, 편집 및 방송에 대한 재량권이 EBS 제작진에게 없어 폭력묘사로 보여질 수 있는 장면이 노출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현행법상 유튜브는 ‘전기통신사업자’로 분류돼 ‘방송’과 같이 공적 책임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법정보가 아닌 이상 아동에게 유해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튜브에서 펭수의 영상을 보는 일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셈입니다. #3의 경우 논란 이후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 게시된 아동의 이미지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아동이 현재 혹은 미래에 갖게 될 불쾌함을 포함해 이번 사안에 책임을 물은 주체도 진 주체도 없습니다.
2016년 프랑스는 미성년자들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게재되었을 때 정보 공개 금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20년 영국은 아동을 대상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지켜야 할 15개 표준을 제시하는 등 각국은 디지털에서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속속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떠할까요?
“안전한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어요.”
2021년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청소년 디지털 플랫폼별 경험 탐색연구’에서 아동이 밝힌 미디어에서 위기를 겪을 때 대처법입니다. 미디어에서 아동을 보호할 책임은 아동 스스로가 아닌 ‘국가’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권리: 학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러다가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교육정책을 만드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한 청소년의 응답입니다. 주입식 교육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외침입니다. 독일 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는 존엄성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 문제라 명명하며, 오늘날의 교육이 아동을 ‘어른들의 기준에 맞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아동인권 선언 100년을 돌아보는 2022년,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하는 질문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교육을 ‘인권 존중의 발달, 향상된 주체성 및 소속감, 아동의 사회화 및 타인 및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아동의 모든 잠재력의 전체적인 발달’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8) 그러나 한국 교육은 실패하였습니다. 국제아동 삶의 질 조사(ISCWEB)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삶의질은 핀란드, 독일 등 35개국 중 31위에 지나지 않았으며, 학습에 대한 만족도는 25위입니다.9)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교육제도의 목표가 아동의 발달이 아니라 명문대 입학으로 보인다고 말하였습니다. 놀이 정책의 성과를 한국 정부가 제시하자 아동들이 놀이와 여가를 정말 누릴 수 있는지 되묻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일주일에 공부하는 시간은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5시간 많습니다. 2018년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인지적 성취에 비해 긍정적 감정, 삶의 의미 등 정의적 영역에서의 발달이 현저히 낮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은 교육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축적, 과도한 경쟁등에 초점을 맞춘 학교교육은 아동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균형적으로 발달하는 것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지식 교육을 넘어서는 교육 개념의 재구조화가 필요합니다. 모든 학생의 평등한 배움과 성장을 보장하는 국가 차원의 교육 개혁이 시급합니다. 100년 전 어린이날의 선언대로 아동을 가까이 하고 사람으로서 아동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시험이나 평가를 위한 활동보다 함께 협동하고 의견을 나누어 재미있게 활동하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교실의 학생 수를 줄여 주세요”, “제발 설명만 하는 수업 하지 말아 주세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이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시험을 줄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지금 교육과정이 정말 초등학생에게 어려워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놀이와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해주세요” 10) 코로나 19 팬데믹의 위기 속, 닫힌 교문으로 학생들의 잃어버린 시간은 가장 결핍되고 소외되었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가장 취약한 아동들은 더욱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정서적·사회적 손실은 측정조차 어렵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통렬하게 다시 물어야 합니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그리고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시작은 아동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듣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교육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아동들의 불행에모두가 부끄러워야 할 어린이날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고우현, 박영의, 강미정)
1. Save the Children (2021). The toughest places to be a child. Global childhood report 2021.
2. 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2019).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이행 대한민국 아동 보고서<교육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3. 세이브더칠드런 (2020). 기후변화 관련 아동·청소년 인식조사
4. 세이브더칠드런 (2021). 기후위기 속에서 태어나다.
5. 방통심의위, EBS-1TV포텐독 등에 법정제재 결정(kocsc.or.kr)
6.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
7. General Comment No.25(2021) on children’s rights in relation to the digital environment(ohchr.org)
8.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1호 (2001). 교육의 목적
9. 세이브더칠드런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2021). 지표를 통해 본 한국 아동의 삶의 질 Ⅴ
10. 세이브더칠드런 (2021). 아동·청소년의 학교 생활 만족도와 학교 교육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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