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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1월호/382호] 어린이·청소년 인권_학생의 사생활과 물건은 더 하찮은가(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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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12-03 20:08 조회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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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사생활과 물건은 더 하찮은가

 

초·중·고교에서 학생의 소지품을 뒤져 보거나 압수하는 문제는 매우 유서깊은 인권 문제이다. 넓게 보면 일기장 검사라든지 사적 기록물을 들여다보는 문제도 ‘사생활의 자유 침해’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그런 데 비해 소지품 문제는 두발 자유화나 체벌 금지와 같은 의제에 비해선 사회적 논의가 좀 덜 된 느낌이다. 이유야 복합적이겠지만, 가장 크게는 소지품 검사·압수에 대해선 ‘필요한 경우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더 강고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듯싶다. 예를 들면 담배라든지, 술이라든지, 청소년 관람 불가 도서라든지 하는 것들은 학교에서 검사하고 압수할 수 있지 않냐는 생각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건 대개 ‘불량학생’들이니 인권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인식도 감지된다.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덤이다.

 

올해 교육부가 밀어붙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서 문구상으로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꼽으라면 나는 제12조 제9항의 소지품 검사·압수 조항을 지목하겠다. 학교장과 교원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물품을 학생으로부터 분리하여 보관할 수 있다.’ 수업 중 휴대전화나 부적합한 물건을 주의를 주어도 사용했을 때, 학생 및 교직원의 안전과 건강에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물품, 법령에 따라 학생에게 판매될 수 없는 물품, 그 밖에 학칙으로 금지한 물품. 교사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물건과 ‘그 밖에 학칙으로’ 규정한 물건 등 매우 포괄적인 이유로 물품을 빼앗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학생들의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규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시행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학생인권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학생인권조례들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례에서는 대체로 ‘안전상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만 사적 물건에 대해 압수가 가능하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정말로 긴급하게 사고나 폭행·상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 외에 ‘학생답지 못한’ 물품들의 경우는? 그런 예로 보통 떠올리는 건 ‘음란물’이나 ‘담배·술’ 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물건들은 비청소년들이 갖고 있다면 별로 문제될 게 없는 것들이다.

한국 사회가 이런 것들을 청소년들이 구하고 쓰는 걸 제한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건강이나 심성을 장기적으로 걱정해서이다. 그러나 흡연·음주 같은 경우도 그렇겠고, 이런 사안이라면 적절한 대화와 교육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지품 수색·압수와 같이 개인의 영역과 권리를 강제로 침해하는 조치는 불필요하고 부당하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에선 소지품 압수의 대상으로 ‘마약’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학교가 뭘 검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 경찰의 수사나 영장 집행에 학교가 협력할 문제이지 않을까?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가장 많이 압수당하는 것은 학생들의 용의·복장 단속이나 학업 분위기와 연관된 물건들이다. 2017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학생들 1,042명의 참여로 집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압수 경험 1위는화장품 종류였고, 휴대전화, 액세서리, 옷·모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교육상 필요한 경우’, ‘학칙에 따라’, ‘교사의 판단에 따라’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다고 용인해 온 결과는 학생들의 사생활·개성·사상·취미 등을 단속하고 검열하는 학교의 풍경이다.

 

우리 헌법에는 사생활의 자유가 명시돼 있고, 수색·압수는 정당하고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 영장이나 그에 준하는 절차를 밟아서 하게 돼 있다. 학생들만 더 포괄적인 사유로,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절차도 없이 자기 물건을 뒤져지고 압수당한다면, 그건 학생의 인권은 더 하찮고 침해당해도 되는 것이라고 가벼이 여기기 때문일 뿐이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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