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호/364호] 미디어와 만나기_영화 Don’t look up 멸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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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3-07 16:52 조회995회 댓글0건본문
◈영화 Don’t look up 멸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격언이 있다. 멸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달리 보면 당장 내일 닥쳐올 멸망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무력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최첨단 우주과학기술을 보유한 현대 인류가, 당장 내일이 아니라 6개월 후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영화<Don’t Look Up>처럼.
거대 혜성이 날아와 지구를 박살 내기까지 남은 시간 6개월, 천문학자들은 NASA의 기술로 로켓을 발사하여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이다. 멸망 앞에서도 대통령은 정치적 손익부터 계산하고 언론매체는 멸망을 흥미로운 가십거리마냥 보도한다. 대중은 멸망보다는 톱스타 커플 결별설에만 관심이 있다. 와중에 대통령이 선거에서 표심을 얻으려고 지구를 구하는 영웅 컨셉을 잡은 덕에 로켓 발사 계획이 추진되긴 한다. 선거가 멸망을 막은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니 어쨌든 이제 지구만 구하면 되는데, 갑자기 대통령은 IT기업 ‘베시’ 대표의 제안에 계획을 변경한다. 혜성을 막지말고 혜성 속 광물 자원을 추출하여 기술과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귓속말 한 번으로 백악관을 움직이는정치자금 실세의 뜻이라지만 빠르게 달려오는 우주의 거대한 혜성을 드론으로 쪼개보겠다는 인간의 오만이라니.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전히 웃고 떠들기 바쁜 사람들을 향해 천문학자들만이 제발 하늘을 보라고 외친다. “Look up(올려다봐)!” 하늘에 버젓이 보일만큼 혜성이 가까워진 순간까지도 대통령의 연설장에 모인 가난한 노동자들은 혜성이 만들어줄 일자리를 굳게 믿으며 ‘Don’t look up(올려다보지 마)’을 외친다.
영화는 코미디를 자처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러스하지만 관객은 마냥 웃지 못한다. 재밌고 빠르고 가벼운 컨텐츠만 찾는 5G 시대의 인간들, 조금만 신중하고 진지하면 ‘노잼’이라 하고 ‘진지충’이라 비아냥거리는 지금의 세상에 멸망이 온다면 정말 딱 이런 모습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Don’t Look Up>은 너무나 현실적인 21세기 재난공포영화다.
멸망 앞에서도 장난만 치는 인류가 어떤 일 앞에서 진지할 수 있을까마는, 여전히 세상에는 장난기 없이 무겁게 임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민들은 누구나 쉽게 정치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지만 빠르고 방대한 소통의 장은 그만큼 가볍고 무질서하기도 하다.
SNS 속 다수의 유권자들은 후보의 공약이나 정당의 방향성 등 보아야 할 건 보지 않고 눈앞의놀거리만 쫓는다. 후보 배우자와 자녀들의 리스크, 익명의 누군가가 늘어놓는 지역감정, 반공주의, 젠더 갈등 등온갖 자극적인 게시물에 근거 없는 비난의 댓글이 이어지며 빠르게 여론이 형성된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부를 뽑는 것도 결국 사회적 멸망이다. ‘노잼’이라 투표하지 않는 것, ‘진지충’이 되기 싫다며 대충 인기투표 하듯 대통령을 뽑는 것은 ‘돈 룩 업’을 을 외치는 이들이 가장 바라는 그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과나무를 심고자 했던 선인들에게 없었던 시간이 있고 영화 속 인류가 즐거운 척만 하다가 놓쳐버렸던 기회가 있다. Look up orDon’t look up? 이제 우리가 선택할 차례다.
조이유 (광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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