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10월호/371호] 기획특집_우리말이 어때서! (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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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10-07 11:25 조회734회 댓글0건본문
우리말이 어때서!
외국어가 그렇게 좋아?
Think Again Iksan! 씽어게인 익산, Community Maketh Culture!(익산), 에코밸리모험센터와 포레스트 어드벤처(전라북도학생수련원, 남원), 오수 펫추모공원(임실), 1004 Heroes(정읍), 완주와일드&로컬푸드축제, 완주 크리에이터페어&인조이어, 밋 업 인 완주(완주), 푸드사이언스관, 미생물 뮤지엄, 음식스토리마켓(순창 발효테마 파크)….
슈메이커, 커뮤니티라운지, 컨퍼런스룸, 오픈라운지, 씽커스토크, 체인지메이커, 소셜 다이닝, 소셜 굿즈, 런 택트, 로컬푸드, 푸드 플랜, 핫플레이스, 제로 웨이스트….
적자면 끝이 없을, 내가 살고 있는 전북에서 보았던 외국어 몇 가지만 써 보았다. 대부분 내가 기관에 전화를 해서 항의했지만 이미 정해진 명칭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저런 단어들을 보면 ‘누가 가장 먼저 저 말을 썼을까, 우리말로는 쓸 수 없었나?’ 그게 궁금하다. 누군가 처음 그 말을 쓰면, 또 누군가 그 말을 쓰고, 너도나도 신나게 쓰다가, 어느 날엔가는 너무 자연스러운 말이 돼 버린다. 그래서 우리말은 외국어에 밀려나게 되고···. 우리말로 쓸 수 있는데도 외국어를 쓰는 이유는 별거 없다.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멋지고 뭔가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이 어때서!
우리말을 지키는 나만의 방식
핸드메이드시티 위크, 월드 페이퍼 프로덕트, 팝업숍, 디자인 크래프트 캠프….
몇 년 전,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린 행사를 구경하는데 저런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덕트? 팝업숍? 크래프트 캠프는 또 뭐랴? 알아듣기 쉽게 우리말로 쓰면 안 되나?’ 내가 왠지 무식하게 느껴져 마음이 까끄름했다. 행사장을 벗어나 주차장을 향해 가는데 경기전 앞에는 ‘만드는 삶, 멋스런 도시’라 쓰인 버스가 서 있었다. 집에 와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서 쓰는 말들’이라며 행사장에서 본 외국어들을 올렸고, 버스 사진과 함께 ‘멋스런’이 아니라 ‘멋스러운’으로 쓰는 것이 맞는 거라고, ‘남의 나라 말은 잘 쓰면서 우리말은 왜 틀리게 쓸까’라고 글을 올렸다. 한 번도 외국어 남용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던 듯하다.
그 후 어떤 자리에서 만난 전주시장에게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라고 외치면서 핸드메이드시티 위크, 팝업숍, 워터미러, 이런 말들이 다 뭐냐고, 전주 시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내 말을 듣고 전주시장은 ‘반성한다’고, ‘많이 도와주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전주역 앞 첫마중길에 있던 ‘워터미러’는 ‘거울못’으로, ‘천만 그루가든시티 전주’라는 정책명에서 ‘가든시티’는 ‘정원도시’로 바뀌었다.
2018년 11월에 <‘공공기관 외국어 사용 그만’…충북 국어쓰기 조례 추진>이라는 기사를 보고 “공공기관, 외국어 사용 그만! 전북도, 전주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전주시장이 봤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보고 시장에게 얘기했는지 아무튼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말 조례를 만들기로 했다고, 도와달라고. 조례안 가안을 들고 온 시청 담당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재작년에 ‘전주시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청은 조금씩 변화가 생겼지만 산하 기관이나 위탁 기관에서 외국어를 쓰는 일은 여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화를 해 왜 외국어를 썼는지 물어보고 공공언어와 언어 차별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곳에서는 내 항의 전화 후에 “솔직히 폼 나서 영어로 썼다”면서 “선생님 말씀이 옳다”며 바로 고친 적도 있었다.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이 혼자서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기관에 전화해서 항의한들 이미 정해진 명칭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멋있고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대로 전화하고, 글을 쓰는 건 ‘외국어를 쓰는게 뭐가 문제인지, 왜 우리말을 써야 하는지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나 혼자 생각하는 것에 그친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찾아 쓰기
전주시청 소식지 교정을 맡고 있는 나는 교정하다가 외국어가 나오면 ‘우리말로 씁시다’라고 교정지에 써 놓거나 담당자에게 말한다. 담당자는 ‘전주 라이프’라는 꼭지를 ‘전주살이’로 바꾸었고, 맛집을 소개하면서 자주 썼던 ‘시그니처 메뉴’는 이제 ‘대표 메뉴’라 쓴다. ‘팟홀가든을 조성한다’는 내용을 보고 담당 부서에 전화해 ‘틈새 꽃밭’으로 쓰자고 제안해 교정 중에 바꾸기도 했다. 처음 소식지를 맡았을 때보다 지금은 외국어가 많이 줄었다. 우리말을 쓰자는 데 뜻을 함께한 담당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Hand Craft Fair In JeonJu’라고 썼던 곳에서는 내가 전화한 후에, ‘전주시 수공예 박람회’로 고쳤고, 전북도교육청 소식지 목차에 나오는 ‘커버 스토리’는 ‘표지 이야기’로 바뀌었다. 새로 단장한 도서관에서 재개관식을 한다며 보낸 초대 문자에 ‘시설 라운딩’은 ‘시설 관람’으로 바꾸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에코밸리 모험센터’와 ‘포레스트 어드벤처’가 있던 전라북도 학생수련원은 올해 영문으로 표기된 수련교육장과 구역의 한글 이름 명칭을 공모 소식을 알렸다.(여기서 ‘한글 이름’이 아니라 ‘우리말 이름’이라고 써야 바르다. 저 명칭은 외국어를 한글로 쓴 거니까.)
Information, 힐링 포레스트, 커뮤니티 마당, Lounge, Medical Office, Staff Room, Facilities Guide, Rest Room, Fitting Room등 공간 명칭을 외국어로 하거나, 영문 표기를 크게 하고, 한글은 작게 썼던 전주의 한 체육센터는 나의 문제 제기 이후 외국어는 우리말로 바꾸고, 한글 표기를 우선으로 바꾸었다.
‘전주시 새활용센터 다시봄’의 공간 이름은 모두 순우리말이다. 휴게실은 ‘파니’, 공유작업실은 ‘길트기꾼’, 체험과 교육 공간은 ‘곰비임비터’, 쉼터는 ‘도래도래터’, 문화공간은 ‘다락마루’. 이 이름들은 공간 이름을 예쁜 우리말로 짓고 싶다고 내게 의뢰가 들어와 추천해 준 순우리말 70여 개 중에서 고른 이름이다. 이렇게 외국어 대신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파니: 아무 하는 일 없이 노는 모양.
길트기: 새 길이나 방법을 여는 일.
곰비임비: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도래도래: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주위에 동그랗게 둘러 있는 모양.
정혜인 (본부 회원 / 교정교열가)
정혜인의 ‘아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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