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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7월호/368호] 마중물_교육은 백년지대계 or 오년지소계?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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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7-07 11:16 조회9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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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백년지대계 or 오년지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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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공화국’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도 안되어 여러 모로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6월 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전형적인 기능주의적, 도구주의적 발상이다. 인간은 노동력으로서 자본과 국가를 위한 도구인가?

 더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은 “교육부가 첨단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이 잘 되려면 교육부가 잘해야 한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서로 연결돼 인력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하, 그렇구나. 모든 정부 부처들이, 나아가 온 국가가 협력해서 자본의 돈벌이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구나! 그런데 이게 웬 일? 바로 이 패러다임이야말로, 박정희 식 개발독재의 발상이 아닌가? 박정희 식 개발독재의 본질은 결코 ‘한강의 기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백사장이 살아 있던 한강은 ‘기적’을 만드느라 아파트와 시멘트로 포위돼 버렸다. 세계적으로 자랑스럽다는 고도의 경제성장도 1천만 농민과 2천만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였지, 박정희가 삽질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걸 아직도 모르는가? 그러니 윤 대통령이 강조한 “발상의 전환”은 사실상 시대 역주행 발상이다. 우리가 이러려고 대통령 선거를 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가? 정말 국민 행복 시대를 여는 대통령이라면 역사적, 사회적 성찰을 하고, 그 위에 진정 새로운 가치(자본 너머의 가치들)를 구현해야 한다.

 

 무섭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속 듣기가! “다른 부처와 협의해 그 수요를 고려해 교육 정책을 펴라”,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자본의 노동력 수요를 반영해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치라는 게 새 정부의 근본 철학이라면 이것은 교육에 대한 폭력을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폭력이 된다. 교육에 대한 폭력이란 까닭은, 이미 <나부터 교육혁명>이나 <더불어 교육혁명>에서 누누이 강조된 바, 교육은 본디 인격체를 양성하는 과정이지 노동력을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력 중심의 교육이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시험 압박 속에 몰아넣고 대학 서열화 구조 속에서 대다수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는가? ‘검찰공화국’의 검사들조차 서울법대라는 우월감 이면에 사회와 역사에 대한 철학(교양)의 부재라는 열등감을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열등감이 밖으로 드러날까 봐 그들은 철저히 자본의 수요와 필요에 복무하는 국가 운영을 하려고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렇게 해서 자본이 성공해야 온 국민은 상부에서 넘쳐흐르는 떡고물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전도된 가치관(이른바 “트리클다운” 이론)을 갖고 있는 게 윤 정부의 본질인가? 그러나 “한 사람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던 삼성 재벌 회장의 발언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 “한 사람의 인재가 빛나는 성과를 내도록 그 주변과 아래쪽의 10만명이 피, 땀, 눈물을 흘린다.” 사회 전반에 대한 폭력이란 이유도 바로 이와 연관된다. 교육의 목표가 산업 인력 공급으로 규정되면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일제고사에 시달려야 하고, 국가가 집중 육성하는 산업 인력이 되기 위해 군사 교육 이상의 규율과 통제를 받으며 공부해야 한다. 자율성과 배려심을 지닌 인격체 성장은 도외시되고 아이나 부모들은 자본과 국가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총동원된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극복되지 못한 교육의 노동력 패러다임을 윤 정부가 더 퇴행적으로 이끈다면 이는 아이들, 부모들, 교사들, 교육자들에 대한 제도적, 비제도적 폭력을 수반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소망은 갈수록 주변화하고 그렇지 않아도 걱정스런 화폐 물신주의, 상품 물신주의, 노동물신주의가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것인가 자본을 키우는 것인가? 이제 자본주의 역시 역사적으로 노예제나 봉건제와 마찬가지로 생로병사(生老病死) 철칙에서 그 마지막 단계, 즉 병(病)과 사(死)의 중간에 놓여 있다. 이를 참으로 진지하게 인식한다면 더 이상 “교육은 산업을 위한 인재 육성”이란 말(?)을 못 할 것이다. 전쟁 위기와 더불어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시간,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가? 교육은 오년지소계가 아니라 백년지대계인 것을!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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