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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6월호/367호] 작은 시민들 평화를 외치다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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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6-08 11:30 조회8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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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시민들 평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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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세 달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찍 전쟁이 끝날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한국은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고 여름이 찾아오고 있다. 차가운 폭격과 비명으로 가득 찬 우크라이나에 평화의 봄이 오지 못하고 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담임 선생님이 보여주는 뉴스로 전쟁을 마주했다. 커다란 전투기가 도시를 폭격했다. 도시는 화염으로 가득찼고 군사작전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바로 BB탄 총이다. BB탄 총이 아닌 진짜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또렷하다. 미국은 힘이 세기 때문에 이라크를 금세 제압할 거라는 아나운서의 말도 기억한다. 전쟁이 나에게 남긴 기억이다. 전투기, 폭격, 군사작전, 함락, 군인 그런 것들.

올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운양초등학교 6학년 12시반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기억을 남겨주기 싫었다. 아이들이 나처럼 먼 훗날 오늘을 떠올릴 때 전쟁보다 평화를 기억하기를 바랐다. 차가운 전쟁의 단면이 아니라 평화와 이를 향한 뜨거운 연대를 배우고 기억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그렇게 3월 3일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배우고 있다. 평화는 전쟁보다 힘이 세다고. 모두가 힘을 모아 평화를 외치고 행동하면 평화를 지킬 수 있음을 다양한 경험으로 배우고 느끼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3월 3일 오전 8시 20분, 나는 학교 정문에서 피켓을 들었다. 노란색과 파란색 배경 위에 ‘STOP WAR, 전쟁 멈춰!’를 쓴 피켓이다. “선생님, 뭐하세요?” 나를 마주한 아이들이 똑같이 말했다. 표정도 비슷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이런 표정이다. 나는 퍽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냐고 말했다. “전쟁 멈춰!” 오른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몇몇 아이들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냐고, 언제부터 전쟁을 했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었다. 4학년 명규는 “전쟁이 일어난 건 알고 있는데, 왜 한국에서 이래요? 우크라이나에 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당황한 나는 “우크라이나에 가서 하면 죽을 수도 있잖아. 전쟁은 죽음이야.”라고 멋없게 답했다. 어떻게 말해줘야 했을까? 아직도잘 모르겠다. 3월 4일 같은 시간에 다시 피켓을 들었다. “선생님, 오늘도 나와 있는 거예요?”, “아직도 전쟁 중이에요?” 어제보다 많은 아이들이 호응했다. 6학년 지환이가 차에서 내렸다. 지환이 몸 뒤로 노란색과 파란색 물체가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환이는 집에서 만든 피켓을 가져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환이는 나의 옆에 섰다. 우리는 같이 정문에서 평화행동을 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전쟁 멈춰!”를 함께 외쳤다. 지환이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정문에 모여들었다. “선생님, 이거 언제까지 할 거예요?” 아이들이 많이 물었다. 별생각 없이 “전쟁 끝날 때까지. 아니면 전교생이 함께 서는 그날까지.”라고 답했다. 나의 바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화행동 사흘째에는 지환이 동생 려환이가 피켓을 만들어왔다. 나흘째에는 려환이 친구들과 다른 아이들도 함께 참여했다. 1학년 꼬꼬마 동생들도 그네를 타고 싶은 유혹을 떨치며 자기 몸만 한 피켓을 들고 정문에 섰다. 이제 제법 많은 아이들이 아침에 모여 함께 평화를 외쳤다. 평화행동을 시작하며 6학년 아이들과 ‘전쟁과 평화’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 한 명이 시작한 평화행동이 확산되는 모습에 6학년 아이들은 신기하다고,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전교생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전교생이 다 같이 평화를 외치자는 말이 나왔다. 전쟁을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어 학교 곳곳에 붙였다. 전교생 75명과 교직원까지 모두 들 수 있도록 피켓 100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운양초등학교 평화행동을 시작한 지일주일 되는 날, 전교생이 모두 모여 평화행동을 외쳤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우리와 같은 어린 학생들이죽고 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어른들이 죽고 있습니다. 다 함께 외쳐주세요. 전쟁 멈춰! 전쟁 멈춰! 전쟁 멈춰!” 6학년 아이들이 주도하고 기획해 강릉 최대 규모의 평화행동이 운양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작은 시민들 평화를 외치다.

 평화를 향한 외침과 열정은 뜨거웠다. 강릉을 넘어 서울까지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3월부터 여러 시민들과 단체들이 모여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을 했다. 4월 16일 토요일 평화행동에는 운양초등학교 아이들도 함께 하게 됐다. 아이들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발언할 기회도 생겼다.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오랫동안 들 수 있고 바람에 부서지지 않도록 피켓을 정비했다. 발언문을 함께 만들었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리허설도 했다. 긴 현수막에 ‘우크라이나 응원합니다.’를 쓰고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채웠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주말 그리고 이른 아침이었지만 아이들 표정은 살아있었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KTX를 탔다. 아이들은 피켓이 부서지지 않게 살피고 또 살폈다. 발언문을 외우고 친구와 확인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덕수궁 ‘고종의 길’을 걸으며 과거 아관파천 당시 우리나라 상황과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리나라의 국제 정세를 비교했다. 러시아 대사관 앞 놀이터에서 휴식을 하며 점거집회(?)도 했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국화잖아요.”, “이 노래 우크라이나 국가 아닌가요?” 아이들은 프로젝트 수업으로 우크라이나를 빠삭히 알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해바라기를 한 송이씩 받고, 직접 만든 피켓을 가방에서 꺼냈다. 리허설 공연을 보며 평화행동을 준비했다. 평화행동 시작을 알리는 발언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발언하는 거냐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며 긴장도 했다. 거리 행진을 했다. 정동제일교회를 나와 경향신문, 동화면세점을 지나 서울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얼떨결에 제일 앞에 섰다. “도대체 몇 명이나 모여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처음이야.”, “우리가 뭐라고 제일 앞에 서 있는 거예요! 긴장돼 죽을 것 같아요!”, “시위를 하면 소리를 지르니까 목이 제일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귀가 제일 아파요! 노래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요!” 스피커 바로 뒤에 있던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한껏 상기되어 외치면서, 안 들릴 때는 그냥 웃어넘기면서, 그렇게 서로를 살아있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평화를 함께 외치면서 먼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멀리 강릉 운양초등학교에서 6학년 12시반 학생들이 평화를 외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커다란 박수로 학생들을 맞아주세요!”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들으며 발언대에 선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평화를 외쳤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때의 자랑스러움은 교사가 학생을 바라보는 뿌듯함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특함이 아니다. 시민이 또 다른 시민을 바라보는 자랑스러움, 어쩌면 같은 시민으로 평화를 외친다는 동질감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시민으로, 어른들과 같은 시민으로 평화를 외쳤다.

“5분 너무 짧았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준비할걸.”, “해보니까 별거 없네. 다음에 또 서울에서 해요.”, “어휴, 떨려서 토할 뻔했어요. 그래도 우리 잘했죠?” 발언을 마친 아이들은 한 뼘 아니 세 뼘은 자랐다. 그런 아이들에게 많은 시민들이 다가왔다. 엄지를 치켜세웠고 박수를 쳐줬다. 장하다며 에너지바를 사와 건넸고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간식을 아이들에게 건넸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대학생은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껏 들뜬 아이들에게 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너희들 배우는 건 다 거짓말이야.” 나를 바라보며 “어디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이 말야, 당신 아이들 속이고 그렇게 살면 안돼!” 작은 소란이 있었다. 어르신이 지나가자 시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니,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공부하는 게 속는 거고 거짓말 아닌가요?” 아이들도 다 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인지. 삶과 앎이 어떻게 연결되고 배움은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오늘 참 많은 것을배웠다.

 

평화는 계속해서 커진다

 화성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들의 평화행동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를 하셨단다. 멀리 강릉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는 말에 한 번, 초등학생 아이들이 외친 평화에 두 번 놀랐단다. 선생님은 직접 손글씨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평화를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이들은 퍽 진지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답장을 보냈다.강릉과 화성,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작은 시민들이 만들어갈 평화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경남 창원의 한 학부모는 우리가 평화를 공부하는 모습을 나의 SNS 계정으로 우연히 확인했다. 1학년 아이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가방보를 만들었단다. 아이는 매일 아침 노란색과 파란색 가방보로 가방을 감싸고 걸어서 학교에 간다. 아이들은 멀리 창원까지 자신들의 행동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평화가 계속해서 커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연대로 평화를 함께 키워간 운양초등학교 6학년 12시반 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인 내가 시작한 평화행동이 아니라, 서울에서 어른들이 기획한 평화행동이 아니라 강릉에서 청소년들을 조직해 평화행동을 직접 기획하고자 한다. 운양초등학교와 가까운 사천초등학교, 사천중학교, 강릉에서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을 한 운산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편지를 전했다. 우리 같이 평화를 외치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언제 끝날까. 매일 아침 아이들과 소식을 찾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참혹한 소식에 속상하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연대하며 키워나가는 평화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우리의 바람이, 우리가 함께 만드는 평화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이번 전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억하면 좋겠다.

전쟁보다 평화가 더 힘이 세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김기수 (강릉 운양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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