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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5월호/377호] 어린이·청소년 인권_2003년 4월의 육우당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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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5-10 14:12 조회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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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의 육우당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2003년 4월의 봄에 자신이 활동하던 성소수자 인권 단체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육우당 (六友堂)이라 이름 지었는데,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는 의미였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외쳤을 뿐 아니라 반전 평화 운동 등 여러 사회 이슈에 동참한 ‘멋진’ 사회운동가였다. 특히 당시 ‘청소년 보호법’ 중 ‘동성애’라는 키워드가 청소년에게 ‘유해’한지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싸웠던 육우당은, 유서 몇 장을 남기고 34만 원가량의 전 재산을 단체에 기부하겠다 밝히며 외쳤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육우당의 유서 中) 

 

2023년 4월의 봄을 맞이하는 오늘날에 그의 간절한 외침은 여전히 메아리치는 듯하다. 최근 서울 지역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요구가 나오는 배경에는 “청소년에게 동성애는 유해하다”는 말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 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 전반에서는 성적 지향 및 성적 정체성과 관련한 다양성 문제를 배제하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국내 유일한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인 ‘사단법인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은 2022년 한 해 동안만 2,805건의 카카오톡 상담 문의, 직접 전화 및 방문 상담 486건이 진행했다고 한다. 다른 청소년상담센터와 달리 띵동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 단체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 2,805건의 상담 문의 ‘수치’는 아주 일부일 뿐 더 많은 간절한 외침들이 뒤엉켜 메아리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2003년 4월로부터 스무 번째 봄을 맞이하는 2023년 4월의 지금 육우당의 외침과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혹자는 그저 자살일 뿐이라거나 또는 그런 ‘아픈’ 기억을 굳이 또 꺼낼 필요가 있냐는 둥 말할 수도 있다. 

특히 ‘순수한’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혹자들 역시 나는 직접 마주친 적이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들의 눈과 귀가 그들의 간절한 외침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나아가 이러한 메아리가 사그라들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청소년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육우당은 ‘제대로’ 추모되고 애도될 수도 없다. 

페미니스트 퀴어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는 “어떤 주체는 애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다 른 주체들은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하는 애도 가능성의 차등적 배분은, 누가 규범에 맞는 인간인가에 대해 특정한 배타적 관념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 살아갈 수 있는 삶, 애도할 수 있는 죽음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주디스 버틀러 씀, 윤조원 옮김, (『위태로운 삶』, 필로소픽, 2018, 13쪽))라고 질문한다. 

 

청소년에게 동성애가 ‘유해’하다는 발화가 사회적 설득력과 정치적 조직화를 이뤄낸 오늘날, 그 10여 년의 세월 동안 육우당과 2003년 4월의 봄이 제대로 애도된 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가 그의 애도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함께 싸워야만 한다. 

그를 ‘제대로’ 애도하는 일은 2023년 4월의 봄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 성 소수자 하나하나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조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우당을 기억합니다”라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말했을 경우 그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거나 노출되더라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육우당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 을 것이다. 

또한 2,805건보다 무수히 많은 외침들에게 이제는 그만 쉬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4월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하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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