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호/383호] 미디어와만나기_영화 '밀양'(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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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12-11 11:22 조회341회 댓글0건본문
영화 ‘밀양’을 통해 읽는 우리 교육의 처참함
33살. 신애는 어린 아들 준과 함께 밀양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녀에게 아무 연고도 없는 밀양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던,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입니다. 그녀는 그런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습니다. 하지만 아들 준이 웅변학원 원장에게 유괴당해 살해당하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뀝니다. 신애는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얻습니다. 신의 사랑을 얻은 신애는 아들의 살해범을 직접 용서하겠다며 교도소로 갑니다. 그러나 이미 신에게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그에게 신애의 용서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신애는 분노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기 위해 악행을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영화 <밀양>의 짧은 줄거리입니다. 제가 이해한 ‘밀양’의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회개와 구원, 그리고 죄와 용서라는 겉으로 드러난 주제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내뱉는 충고들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유리창과 같은 벽들이,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 영화에는 가득합니다. 밀양의 세 번째 주제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헛된 욕망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죠. 세 번째 주제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다시 살펴볼까요?
신애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멋진 피아니스트도 행복한 가정도 모두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루고자 했던 꿈이었습니다. 그런 꿈이 무너지자 그녀는 ‘자신만을 사랑했던 남편이 죽고, 그를 못 잊어 그의 고향으로 내려온 돈 많은 미망인’이라는 환상의 무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신애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땅을 살 돈도 없으면서 좋은 땅을 보러 다닙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들이 살해당하고 자신이 만들려고 했던 환상의 무대는 무너져 내립니다. 신애는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신의 뜻이었다고 믿기로 합니다. 그녀는 교회에서 자신의 불행한 삶을 극복하고, 깊은 믿음을 가진 교인이라는 새로운 환상의 무대를 만들어나갑니다. 그러나 그 환상마저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는 범죄자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지지 않겠다’며 입을 앙다뭅니다. 영화의 마지막, 감독은 거울을 바라보는 신애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을 신애의 자리에 앉힙니다.
신애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외면합니다. 신애에게는 왜 이렇게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중요했던 것일까요? 아니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자존감을 잃고, ‘지지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울까요? 자존감을 키울 수 없는 교육이 우리들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앞세워 등수를 나누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내면화시키는 교육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헛된 욕망입니다.
우리는 대학의 서열을,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를, 직장 내 직위를, 인스타그램 속 생활의 양식을, 브랜드 아파트와 사는 동네를, 소유한 땅과 건물을 학교의 등급처럼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듭니다. ‘나’라는 고유한 가치를 잃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위치를 보이고자 하는 마음의 고통은 이 땅의 교육이 만들어낸 불행입니다. 저는 ‘밀양’에서 우리 교육의 처참함을 봅니다.
송민수 (홍보출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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