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호/383호] 어린이·청소년 인권_양육되는 ‘아이’를 넘어,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해(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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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12-11 11:16 조회401회 댓글0건본문
양육되는 ‘아이’를 넘어,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해
일반적으로 어린이·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자에게 의존하여 보호와 돌봄을 받고 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념의 밑바탕에는 가족을 이룰 수 있으려면 일정 이상의 나이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 중심의 관점과 달리, 사실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은 나이와 능력들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어린이·청소년은 가족 안에서 구성원들과 상호 작용하며 돌봄과 가사노동들을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도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동안 기존의 가족 관련 법과 제도, 사회문화 등에 있는 혈연 중심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논의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틀과 보호자의 통제가 어린이·청소년의 시민적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았다. 어린이·청소년에게 ‘가족’은 어른들이 만들어 준 것으로만 생각되기 때문이다.
올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대표 발의한 「생활 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은 혼인, 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형태의 가족들이 법률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 법안에서도 생활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에 어린이·청소년을 포함해 이주민, 장애인 등 시민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소수자는 고려되지 않았다. 어린이·청소년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한 접근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고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의 일상에서 결정권자는 대개 본인이 아닌 보호자가 된다. 법적으로 어린이·청소년이 법적인 영역에서 법정 대리인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 교육과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생활 양식까지 다양하게 통제된다. 예컨대 일기장을 검사당하거나 휴대폰을 압수당하는 사생활 침해를 겪고, 연애 생활을 규제받고 진로를 강요당하고, 보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을 당하는 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자에 의한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침해는 다양하게 이뤄진다. 소위 말하는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보호는 당사자의 행위를 제한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인권 침해나 불평등, 억압 등 문제 해결은 없이 어린이·청소년은 그저 집 안에 있어야만 한다. 이처럼 어린이·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지 못하는 제도와 문화는 어린이·청소년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리는 문제, 가정에서 벗어났을 때 정부와 사회가 충분한 자립 지원이나 주거 시설을 보장하지 않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가족 구성권은 단순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시민으로서 욕구를 충족하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제반에 참여하는, 시민적 권리이다. 가족 구성권의 실천을 위해선 어린이·청소년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고, 사회 전반에서 보호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을 바꾸면서 자립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호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친권을 축소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책임지고 돌봄과 양육의 문제를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보호자와 어린이·청소년 서로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국가에서 교육과 상담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하며, 가정을 벗어난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가 보장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어린이·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가지는 것, 보호자에게 부과된 노동과 재생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여러 법제를 바꾸려는 시도들을 논의하는 속에서 가족 구성권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돼야 한다.
빈둥 (청소년 인권운동연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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