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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38호 방학, 한 권의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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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8-02 17:28 조회8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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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이 다가옵니다. 학생들에게는 해방의 시간이요, 교사들에게는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걱정과 부담으로 다가올 겁니다. 밥도 챙겨줘야 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니까요. 어떤 부모님들은 놀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억지로 문제집을 사서 안겨주기도 하고, 어떤 부모님들은 ‘미래를 위하여’ 하루 종일 학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신나는 체험학습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요. 여행을 학원에 위탁하기도 하지만, 성실파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빕니다. 각종 박물관을 섭렵하고 연극도 봅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캠핑을 떠나기도 하고 여유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떤 것이든, 아이들이 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노력이요, 정성이지요. 누가 그 정성에 함부로 돌을 던지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정성을 쏟는 것이 아이들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정성도 어찌 보면 교사나 부모님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의 삶을 디자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대로, 우리가 인도하는 대로 아이들이 쫓아오기를 바라곤 합니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업을 구상할 때에도, 아이의 진로를 고민할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시각에 맞추어 아이들이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그게 인지상정이기도 하지요. 어떤 부모와 선생이 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늘 좋은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방학 - 빈 시간의 향연
 교실에서 어떤 문학작품에 대한 수업을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문학작품이었고 아이들도 꽤나 흥미로워 하였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저도 흥에 겨워 수업을 펼쳐갔습니다.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 뭐하세요?”
“응? 수업 준비하지.”
“문학 수업이요? 아까 했던 거?”
책상에 상반신을 기대고 조금 전에 수업했던 책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품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조금 자신 있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응. 수업 어땠니?”
“좀 전의 수업이요?”
어럽쇼?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응.”
“음... 좋은데요, 선생님. 그런데요.”
아이는 그렇게 입을 떼었습니다.
 그 뒤로 그 아이가 제게 해준 이야기는 짧지만 매우 인상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습니다. 제가 자기들한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너무 자세히 안내해주고 너무 세세히 설명해 준다며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자기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배울 수 있는데, 저의 수업은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이나 그것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누리고 생각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가르치는 내용들이 다소 강제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엮어나갈 능력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지나치면, 그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야성의 능력을 거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체벌과 욕설이 난무하는 수업만이 폭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생각할 기회와 여지를 빼앗고 강요하는 수업이나 양육 방식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아이들을 믿고 그냥 놔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어있는 배움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가게 내버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게임과 인터넷, TV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충분히 폭력적이니까요.)

한 권의 책
 제 주변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분들의 어린 시절은 단조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박물관을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연극과 영화를 보러 돌아다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미술을 감상할 줄 알고, 연극을 좋아합니다. 세상을 누릴 수 있는 눈과 그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어린 시절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 동안 한가한 상태로 있었고, 그 시간에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도 했지만, 때로는 한 권의 책에 꽂혀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곤 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엄청나게 여유로운 시간 가운데에서 제가 선택한 ‘할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둘리틀 선생님 이야기나, 모비 딕, 플루타르크 영웅전, 수호지, 토마 이야기 같은 책들은 책 표지가 너덜거릴 정도로 여러 번 읽곤 하였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저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기질들과 에너지들의 근원은 그 몇 권의 책에서 기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흔에 가까운 저의 모습과 그 책들의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지는것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여러 번 읽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다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독이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사람들은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독서 습관은 무의식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그런 정성이 아이들을 보다 깊이 있는 배움으로 늘 인도하는 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저는 설명문을 배우는 국어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도서관에 가곤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지식이 설명되어 있는 책을 찾아보게 합니다. 아이들은 두 시간이라는 긴긴 시간동안 도서관을 배회합니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책을 찾습니다. 내가 끌리는 지식, 나를 잡아당기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을 찾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찾으면 그 책을 읽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여러 번 반복 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지식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은 별로 흥미 있어 하지 않는데 나는 좋아하는 지식’이 어떤 것인지 감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마다 기질이 다르고 쌓아놓은 소양이 다르니까요. 어떤 아이들은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만화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그 활동은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도록 권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억지로 그렇게 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 부모와 교사는 길을 열어주고 허용해주는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오래 붙들고 있어도 답답해하지 아니하고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고 있어도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떠나는 지식 여행
 정성들여 ‘내가 좋아하는 책’을 찾았다면, 그 다음 순서는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읽어주십시오.
 읽으라며 책을 던져주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읽어주는 겁니다. 아이들은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1학년이든 6학년이든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실감나게 읽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오디오북 같은 것을 구해서 틀어주는 것은 웬만하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이야기 나누십시오.
 책을 읽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파브르가 아까 무슨 곤충을 관찰했지?” “ 그 곤충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지?”와 같이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은 시험 보는 기분이 들어서 애들이 싫어합니다. “오! 신기한데?” “이것 좀 봐! 우리 집 주방에도 이런 벌레가 있어!” “ 이건 뭘까?”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의 언어, 친구와 나누는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3.지식을 확장시켜라.
 아이가 원한다면, 책을 읽어주다가 더 알아보고 싶은 내용을 찾아 탐구하게 합니다. 인터넷보다는 백과사전이 좋겠습니다. (인터넷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쉽게 빼앗아 갑니다, 아주 쉽게.) 집에 백과사전이 없다면 궁금한 점을 메모해두었다가 도서관의 백과사전을 뒤져보는 미션을 부여해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4.스스로 읽게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긴긴 책 읽기/듣기가 끝났다면 그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한 번 정도 권해보고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면 다시 권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 다음 책을 찾으면 됩니다.

방학,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세요.
 방학동안 너무 많은 것을 하려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찬’ 방학과 ‘꽉 찬’ 방학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www.noworry.kr)’에서 나온 책들과 학부모 인터넷 강좌를 들으면 성적 때문에 볶이는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방학동안 많은 학생들이 매달리는 선행학습이 정말 효과를 발휘할까요? 방학동안 학원에 몰입해 있던 아이가 학교 공부를 잘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방학동안 지친 아이들이 지적 호기심을 상실하고, 그것이 더 큰 문제를 낳는 원인이 되는 것을 아주 많이 보아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보는 기말고사 성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기말고사는 개념적인 지식을 얼마나 습득하고 있는가를 측정합니다. 개념적인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암기한 그 지식들은 중고등학교에 가서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배움의 욕구 없이, 좁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책을 붙들어야 하는 그 긴긴 시간을 무슨 힘으로 버틴단 말입니까.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참부모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자녀의 배움을 돈으로 해치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녀들을 올곧게 보듬고 바르게 성장시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사람이 되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세상을 사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아이들과의 긴긴 방학을 함께하는 좋겠습니다. 모두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 행복한수업만들기(초등) 사무국장 교사 문경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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