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공공성 | 296호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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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8-17 17:03 조회1,3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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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되기는 쉽다. 그러나 교사답기는 어렵다.
교사로 첫걸음을 내디뎠던 곳은 진주의 진양고등학교였다. 3월 첫 주 점심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를 보고 화장실로 이동해서 몇몇 아이들을 붙잡았다. “담배 피웠니?”라는 내 질문에 그 몇몇 아이들은 “아니요!”라고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아이들의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몇 대라고 정하지 않고 사실을 말할 때까지 때릴 작정이었다.
20대가 넘어가니 몇몇 아이들은 담배를 피웠다고 이실직고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학교에 ‘F4’라는 별난 남자아이들 4총사가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속한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여러 방법으로 기합을 줬다. 첫 번째 아이의 엉덩이를 때릴 때였다. 때린 직후 드는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쾌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내 딸이 생각났다. 이후 오늘까지 아이들을 때린 적이 없다. 첫 번째 이유는 그때 느껴졌던 쾌감에 중독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내 딸처럼 이 아이들도 누구 집의 귀한 자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딸을 낳기 전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귀한 자식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와 닿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내 딸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학교 아이들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사가 되기는 쉽지만, 교사답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험난하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해서 교사가 될 때는 ‘이해’만 있으면 가능했다. 하지만 교사답기 위해서는 ‘이해’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해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존재들도 이해하기가 힘든데, 하물며 아이들이랴?
인문계 고교 내에서 대안교실(꿈키움 교실)을 운영한 이유
2014년 2월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를 마치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감에 빠졌다. 왜냐하면 2012년, 2013년 2~3학년 학생들을 연이어 담임을 맡아 2년간 소위 대학입시 지도를 한 결과, 36명의 한 반 학생들 중 정규수업, 보충수업, 특별강좌, 야간자율학습 등 입시에 초점 맞추어진 일련의 교육활동들이 단 5~6명의 학생들에게만 필요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5~6명을 제외한 30여 명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주도하는 입시교육에 늘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정규수업 시간에 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정말 의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담임으로서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반 아이들을 압박했다. 결국 입시 결과를 분석하면서 대부분 학생들에게 학교가, 그리고 담임이 했던 일련의 교육활동, 특히 입시에 초점 맞추어진 교육활동이 무의미했고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교육활동을 했더라면 아이들에게 더욱 유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5~6명에게 의미가 있었던 입시교육이 왜 30여 명의 학생들에게는 무의미했을까? 일단 대학만 잘 가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고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텐데. 조금만 인내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잘 버티면 좋은 날들이 도래할 텐데. 비록 재미없는 수업이 많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듣는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텐데. 도대체 ‘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을까?’라는 고민은 계속 되었다. 고민의 결과, ‘학생들의 문제가 아닌 학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학교가 학생들에게 입시교육 이외에 고등학교 이후의 다양한 삶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오히려 입시교육이 학생들이 자신의 다양한 삶을 모색하는데 방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2014년부터 마음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인문계 고교 내 대안교실을 운영하였다. 우리의 목적은 입시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의 길을 모색할 방법을 수업 중심 교육으로 제시하고 혹시 이 중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학습에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상담과 치유를 제공해서 학교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대안교실의 두 축 : 움직이는 교실 & Learning Through Internship(Interest)
교실은 ‘잠자는 곳’, ‘감옥과 같은 곳’, ‘강압적인 학습 요구만 있고 내 이야기가 전달되기 어려운 곳’이
라는 정의는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교실에 부정적인 생
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교실은 답답한 곳’이라는 점이다. 특히 교실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잠만 잔다. 차라리 떠들거나 활발했으면 좋겠는데,밤에 뭘 했는지 낮과 밤이 바뀌어서 낮-학교의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계속 잠만 잔다. ‘어떻
게 깨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교실을 움직여 버리자’였다. 마치 TV 프로그램 ‘러닝
맨’처럼 학생들이 교실 곳곳, 학교 곳곳을 돌며 미션을 수행하게 하고 미션 내용이 교과 내용 혹은 다
양한 공동체 체험 프로그램이 되는 형태이다.
이 대안 프로그램의 장점은 먼저 ‘아이들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점이다. 팀별로 미션을 빨리 수행해야 승리하기 때문에 잠잘 틈이 없다. 일단 잠을 자지 않아야 뭐든 할 것 아닌가?
두 번째로 움직이는 교실은 팀별로 협동해야 미션을 수행해 낼 수 있어서 unit화되어 있는 아이들을 unity로 만들 수 있다.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는 학생들은 함께 어떤 일, 프로젝트를 해 본 경험이 현저히 부족하다. 아이들이 직접 공동체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경험하여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움직이는 교실의 두 번째 장점이다.
세 번째로 학습에 대한 흥미도 재고이다. 움직이는 교실의 미션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예를 들
면 국어 선생님을 찾아서 그분이 주는 미션을 팀이 함께 수행해 내는 것이라면, 국어 선생님은 어떤 시를 팀원들이 함께 빠른 시간 내에 암송는 미션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 교과목에 적용될 수 있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꼭 교과 내용이 아니더라도 컴퓨터실에서의 미션은 게임을 아주 잘하는 선생님과 게임을 해서 이겨야만 통과되는 미션이다.
L.T.I. 프로그램은 미국 매트스쿨에서 시작된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직업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업 현장의 멘토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자신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설정하고 그 프로젝트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창원에 있는 태봉고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태봉고등학교를 방문하면서 ‘웅상고등학교 대안교실에 이 프로그램을 접목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큰 장벽이 존재했다. 바로 ‘지역사회에서 어떤 멘토 선생님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무작정 학교 인근 미용실, 도서관, 커피숍, 목공소, 카센터, 지역 아동센터를 다니면서 아이들의 멘토 교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드렸다. 다들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매우 어색해하셨다. 하지만 학교가 정말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마음이 잘 전달되었는지 웅상고 아이들을 맡아서 멘토가 되어줄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인턴십 초기에는 모든 아이들을 인턴십 현장에 데려다 주었다.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고 과연 아이들이 ‘그 현장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잠만 자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멘토 선생님들께 혹여나 폐를 끼치진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학교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턴십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 놀라웠다. 청소 등 허드렛일도 해야 하는데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바꾼 것일까?’ 하는 생각 이전에 ‘학교가 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교실과 L.T.I. 프로그램은 웅상고등학교 대안교실의 중요한 두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운영 중에 발견되는 문제점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매년 보완해서 가다듬는 중이다. 수년 후에는 어느 학교에서도 쉽게 적용이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살아나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승주 (웅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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