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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 | 293호 가장 치열했고 허무했던 2년, 나의 학운위 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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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8-10 16:29 조회1,0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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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학에서 활동하면서 학운위나 학부모회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아이 넷을 학교에 보내면서 학부모 총회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학급 엄마들 모임도 가급적 참석했고, 드문 드문 아이가 학급임원이나 전교 임원을 하는 일이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학급 엄마들 모임을 이끌어 보기도 했지만, 열정적으로 하진 않았었다. 학교 엄마들과는 좀처럼 친해지기 힘들었다. 화제는 항상 아이들의 성적과 학원 이야기였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신기해하기만 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더 이상 필요한 정보를 나에게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 인지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모임이 재미가 없어 슬금슬금 빠지곤 했다.

 

이렇게 소극적인 학부모 활동(?)만 하다가 막내가 중2 되던 재작년, 지금 하지 않으면 학부모위원은 해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후보 서류를 접수했고 늘 있는 마법처럼 딱 맞춘 입후보자 수로 무투표 당선이 되었다. 나는 혹시나 선거하게 되는 상황이 오거나 학교 측에서 입후보자 수를 맞추기 위해 나에게 사퇴를 권하는 극적인 상황을 그려보기도 했는데,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무투표 당선이 된 것이다. 아마도 학교는 나처럼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희귀한 경우 외에는 필요한 인원을 알음알음으로 추천받아 개인적으로 권하는 식으로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나 말고 다른 위원들은 서로 아주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우리 학교는 강남에서도 학업성적이 높은 편으로 인기 있는 중학교여서 교장, 교감, 교사들의 자부심이 있고 학부모들도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학생들은 대부분 순종적이어서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잘 따르는 편이라 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참 편안한 학교일 것이다. 촌지나 체벌 같은 불법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학운위원들이 돈을 걷어서 회식을 한다거나 학교발전기금을 내는 일도 없고 회의도 절차를 지켜 진행한다. 그러나 학생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내가 보기엔 우리 학교는 학생의 학업성적과 급식은 좋을지 몰라도 학생 자치나 학생의 인권 존중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회의 중에도 학생들이 하는 교육활동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 매번 회의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난 다음 예정되어 있던 수학여행 연기에 대한 안건을 심의하는데, 학부모에게만 설문 조사하여 결정하겠다고 해서 내가 학생의 의견을 물어보았는지 물었다. 담당교사는 “학생들은 당연히 가고 싶겠죠. 하지만….”이라고 대답해서 학생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 학생들에게 묻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학생들이 가겠다고 할지 취소하는 게 좋겠다고 할지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까? 같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엄청난 사고를 당해 3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는데, 상관없으니 우리는 가자고 할 만큼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묻고 설명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다른 위원들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냥 결정하자고 밀어붙였다. 나는 결정 후에라도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토론이나 설명을 꼭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러겠다고 했지만, 아이를 통해 물어보니 그렇게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회의는 대부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질문이나 이견은 없었다. 안건을 7~8개 처리하는데 15분 만에 끝난 적도 있을 정도였다. 회의록을 찾아보니 그나마 매번 질문과 의견을 말한 것은 나밖에 없었고 그것도 다른 위원들의 무반응으로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주로 학생의 용의복장에 대한 과한 규제, 임의로 정한 등교 시간에 대한 과도한 단속 및 벌칙 등에 대해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는데, 교사위원들은 그에 대한 당위성을 학교 입장에서 설명하고 학부모위원들은 학교 측의 설명에 동의하나 더 나아가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힘이 빠졌다. 학부모위원들은 상을 주는 교내 대회, 교복업체 선정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질문하고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른 일들은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였다. 매번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기타 의견이나 질의를 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운위 회의를 하고 나면 소수자가 된 듯 고립감을 느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위원들의 지지로 작년에는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는 재작년과 마찬가지였다. 학운위 회의의 분위기도 위원들의 태도도 달라 진 것이 없었다. 야심 차게 들어간 예결산소위의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예결산소위 회의가 본회의 30분 전으로 잡혔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학교에 전화했더니 늘 그래 왔고 다들 너무 바빠서 다른 시간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학운위 활동을 하며 몇 년째 예결산소위를 했던 한 위원은 나에게 유난을 떤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는 듯 내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작년 학부모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반응을 보인 일은 메르스가 유행할 때 임시휴교를 정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교장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했다.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학부모들의 공포는 극에 달해서 교육청에서 정한 3일 휴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주일 휴교를 결정했다. 이런 열정을 학생들의 권리보호에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이제 다음 주면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한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학운위원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일이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서로 친밀해지면 생각을 나누고 함께 노력해볼 일이 무엇인지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했다면 지금처럼 빈손으로 끝나는 허무함은 없었을 것이다. 소심함에서 벗어나 관철해야 할 일은 강하게 주장해봤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지지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두려워 쉽게 타협해버렸던 내가 부끄럽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끊임없이, 인정도 못 받고 질시의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할 말을 놓치지 않고 했던 나에게 그래도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에게 낯선 언어를 자주 말하면 다음에 들을 때는 더 이상 낯선 언어가 아니게 될 테니 그 노력만큼은 헛된 것이 아닐거라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개인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는 시기에 학운위까지 하느라 사실 회의시간 내기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참학에서 배운 것을 해 볼 여유가 너무 없었다. 또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들어가서 변화를 일으키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와 생각이 맞는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의 17년 학부모 생활 중 가장 열심히 살았지만, 가장 허탈했던 2년을 보낸 후 나는 지금 고민 중이다. 이것으로 끝낼 것인가? 다시 한 번 시작해볼 것인가?

 

고유경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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