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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309호 학문의 바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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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7-07 15:25 조회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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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바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춤추기

시흥 장곡중학교의 자유학기제


1. 배움의 역설

장곡중학교의 자유학기제에 관한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서 처음 오른 말이 ‘배움의 역설’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때, 바로 그 순간 진짜 배움이 일어난다는 이 기이한 역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이 역설의 참뜻은 몇 마디 말이나 글로써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롯이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직접 체험하거나 목격할 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가 성장한다는 뜻이니,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게 애썼던 장곡중학교의 교사들이 노력해온 과정은 그러므로 아이들의 성장뿐 아니라 교사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배우는 아이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배우는 교사들 역시 결코 무너질 리 없다. 배움이란 그런 것이다. 교사를 두고 ‘배워서 남 주는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사실 교사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때도 이맘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더위로 녹아내릴 것 같던 2015학년도의 1학기 말 즈음….
 “○월 ○일에 마을학교 좀 써도 될까요?”
“왜?”
“2학기 자유학기제 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혼자 쓰자니 너무 막막해서 두어 명이 함께 밤새워 머리 좀 맞대 보려고요. 침낭을 가져가서 밤 새워 구상하다가 졸리면 누워 자고.”
“그래. 써.”
“그래도 담당하시는 분께 미리 연락은 드려야겠지요?”
“내가 연락해 줄게.”


그날의 기억을 굳이 여기에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열정과 헌신이 대단했다는 걸 밝히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놀다 보니’ 그 놀이가 일로 이어진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누가 일을 시켜서 했겠는가? 너무 재미있어서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근사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서로서로 자양분으로 삼아 밀물과 썰물의 만남 속에서 섬은 연결되고 다듬어진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장곡중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개인별로 하지 않는다. 수업을 계획하고 그것을 디자인하여 실현하는 일까지는 잘하든 못하든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은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곡중학교는 변화의 핵심을 ‘수업’에 두었지만,결과적으로 변화한 것은 수업만이 아니었다. 마인드를 바꾸고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수업 공개와 협의회가 필수인데, 2010년도부터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수업 공개와 협의회는 수업을 공개한 교사뿐 아니라 참관한 교사 모두를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장 과정 속에 교육과정 재구성 논의가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발전해 온 장곡중의 수업 혁신은 참으로 진한 감동을 담은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되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2. 우리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

  어쩌면 혹자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장곡중학교의 수많은 실천 사례들은 정책 실시 이전부터 시도되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배움중심수업, 교육과정 재구성, 평가 혁신, 마을교육공동체, 자유학기제 실시 등.
  2010년도부터 시도하여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장곡중학교의 수업은 교사 중심의 수업으로부터 배움 중심의 수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던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교과통합수업으로 대변되는 교육과정 재구성 역시2010년도부터 시도해 왔던 노력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며 발전해온 것으로 이제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되었다. 더욱이 수업을 바꾸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면서 평가 혁신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경기도 교육청의 핵심 사업으로 떠오른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 역시 수 년 전부터 마을과 학교의 연대를 중심으로 실천해 왔던 장곡중학교의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뿐인가? 올해부터 경기도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유학년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업 혁신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인데, 단언컨대 장곡중학교의 모든 프로젝트 수업은 사실상 자유학기제의 참뜻을 실현하고 있는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곡중학교의 수업은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진행해 왔던 수업이었다. ‘top-down’ 의 방식이 아니라 ‘bottom-up’의,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변화였던 셈이다. 따라서 어느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진 교육과정이 아니며, 수년간의 경험과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모이고 쌓이면서 이루어져 왔다.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지속 가능성의 힘은 더 크다. 그 한 사람이 떠나거나 힘을 잃으면 그만일 뿐인 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일컬어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고 할 만큼 공교육의 위기가 극대화되고 있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한경쟁의 차가운 나락이 아니라 따뜻한 협력과 서로를 향해 마주 잡은 두손의 온기일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구체화하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온 길, 이 길을 구체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가시화한 것이 바로 ‘자유학기제’라고 할 수 있다.
  장곡중학교는 2015학년도부터 자유학기제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첫 시도이기에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도 없지 않았으나, 우리가 펼치고 있는 각종 프로젝트 수업들이 결국은 자유학기제의 본질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자유학기’라는 명칭을 달고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
 장곡중학교에서는 학년별 프로젝트들이 많고, 이를 위해서 블록수업을 심심치 않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중등학교에서 블록수업을 실시하려면 거쳐야 하는 난관이 만만치 않다. 한 학급을 담당하는 과목별 교사 10여 명의 시간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시간을 옮겨 시간표를 변경하고자 할 때 일어나는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자유학기제 기간에는 과목별로 한 단위씩을 감축해서 모은 시간을 오후에 몰아 2~3시간씩의 블록수업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기존에 해 왔던 수업을 정책적 지원 속에 펼칠 수 있게 된 셈이다.

  장곡중학교의 교육과정이 처음부터 목적의식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며, 수업을 혁신하고자 한 교사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매우 점진적으로 이룩해 온 것임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장곡중학교는 혁신의 첫 단추를 ‘수업’에서 찾았던 것이다. 교사의 삶과 가장 밀접한 것, 그리고 동시에 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수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0학년도에 혁신학교를시작하면서, 장곡중학교의 교사들은 파일럿 조사의 대상으로서 몇몇 학교 들을 탐방했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의 혁신학교를 둘러본 결과 ‘수업’을 중심에 둔 혁신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들었다.
  수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은 교육과정 재구성의 꿈으로 이어졌고, 수업-교육과정-평가를 일체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평가 혁신의 가능성도 맛보았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다 보니 교실 속에 갇힌 배움만으로는 너무나도 큰 한계를 느끼게 되고, 따라서 배움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려는 노력 속에 ‘마을’이라는 길을 찾게 되었던 것. 그러므로 장곡중학교의 교육과정은 학교를 품고
있는 마을과 소통하려는 마을 교육과정이면서, 동시에 학생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지향과 기회를 제공하는 자유학기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3. 현재의 모습, 그리고 남은 과제

  다음은 장곡중학교의 자유학기 및 연계 자유학기 운영 모형 및 개요이다.
  경기도 전역에서 ‘자유학년제’를 실시하는 올해부터, 자유학기제를 1학기에 하든 2학기에 하든 학교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에 따라 장곡중학교는 현재 1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2학기에 연계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과 2016년을 거치면서 1학년 2학기에 자유학기를 실시해 왔기 때문에, 교사들의 편의만을 생각했다면 올해도 2학기에 자유학기를 실시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학기 기간에는 내신 성적도 산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취평가도 실시하지 않는 데 비해, 연계자유학기 기간에는 내신 성적은 산출하지 않지만 성취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발달 단계를 고려하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1학기에 자유학기를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1학기에 실시하다 보니 아이들 간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열네 살, 영화로 세상을 만나다’ 프로젝트는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모둠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전과정을 교육과정 속에 녹여 낸 수업인데, 한 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친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만만치 않다.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 여러 명이 서로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작하고 상영하는 단계를 거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의미도 남달랐다고 회고하곤 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싸워가며 만들어 가는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친구들 간의 평소 관계가 중요하다. 탄탄하게 만들어진 관계 위에 있을 때 갈등과 반목이 생기더라도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학기 초에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이기 때문에서로를 잘 모를 수밖에 없는데, 학기 초에 동아리 및 예술체육 활동을 위해 반을 구성하다 보니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반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친한 친구를 따라서 가입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수업을 질적으로 우수하게 진행하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내년에는 기존대로 2학기를 자유학기로 지정하기로 마음을 모은 상태이다.

자유학기제의 취지와 목적에 십분 공감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학기제를 제대로 정착시켜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등학교에 지워진 ‘수업 시수’의 짐을 줄여 줄 필요가 있다. 1년 간 이수해야 하는 수업 시수가 1,122시간으로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교과별 단위에 따라 이수해야 하는 시수까지 정해져 있다. 한 학기를 보통 17주라고 정해 놓았기 때문에 ‘한 단위’는 17시간이 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중등학교는 한 학기를 20주 넘게 운영한다. 대학생들보다 중고등학생들이 방학을 훨씬 더 늦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곡중학교처럼 블록수업과 통합수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동시에 법적인이수 시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한 교과의 수업 시수가 부족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신경 쓰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수업하는 교사들 중 누군가는 엄청나게 머리 아픈이 과정을 통해 고생하는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면 예술 활동이나 관계 활동만 남는다는데, 그러면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한 근대 학교 교육 역시 그에 맞춰 교육과정의 양을 대폭 줄여야 하지 않을까? 단언컨대, 많이 가르친다고 해서 많이 배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더욱이 교과통합수업을 통해교과 간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교과별로 정해진 이수 시수의 규정 자체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사들이 제대로 하고 싶어도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면 시도조차 못할 것이기에.
  지면에 한계가 있어 이렇게 장곡중 학교의 교사들이 느끼는 목마름을 간략하게 정리하며 글을 맺는다.


백윤애 (시흥 장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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