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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265호 행복한 작은 학교 만들기, 4년의 여정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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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1-19 16:39 조회9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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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행복한 농촌을 꿈꾸며 전남 영광으로 귀 촌한지 7년, 그 당시 삶터를 옮기면서 가장 많이 고 려를 했던 것은 두 아들이 다닐 학교였다. 가급적 거주할 집과 학교가 가깝고 도시의 콩나물시루 같 은 학교보다는 농촌의 작은 학교가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 생 각했기에 현재의 이곳으로 정착 할 수 있었다. 물론 결정의 과정 속에서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8살, 4살이던 장난꾸러기 두 아들은 시골 생활은 물론 이고 당시 전교생 23명이던 학교에서 재미나게 잘 적응해 갔다. 이제 큰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다.

 

 귀촌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무 렵인 2009년 중순, 학생 수 감소로 학교를 통폐합 한다는 공문이 왔고, 몇 차례의 대책회의를 끝에 면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초등학교의 폐교는 지역의 몰락을 유도하고 농촌 지역 아이들의 교육권을 박 탈하는 것이라 것에 동의하여 학교 살리기를 진행 하기로 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여민동락공동체도 지역을 살리는 길에 함께 하기로 해 2010년 작은 학교 살리기 공청회를 시작으로 행복한 작은 학교 만들기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선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지역 곳곳을 찾아다 니고 수소문 했다. 아이들을 다른 곳에 보내던 학 부모들을 설득하고 외부에서 귀농, 귀촌하는 사람 들을 만나 작은 학교의 장점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 러면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2주전 12명이던 학 생 수가 기적적으로 23명으로 늘어 2년의 유예기 간 이었지만 간신히 통폐합을 면했다.

 이후 곧바로 학생들 통학을 위해 15인승 봉고 차 량을 구입해 등하교 자원봉사를 비롯해 학부모들 과 교사들을 필두로 지역민들을 설득하여 ‘작은 학 교 만들기 기금’을 조성하였다. 학생 전원에게 예체 능 학원을 보내주고 다양한 체험활동과 문화공연 등을 개최하였으며, 지역과 함께하는 행사들도 진 행하였다. 2년차부터는 밤에도 열리는 학교를 열어 국선도, 제과제빵, 한지공예, 천체과학교실, 탁구 등 원하는 강좌를 개설하여 결손가정과 맞벌이 가 정의 다양한 욕구를 해소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이전에 없던 가야금, 연극, 풍물 등등 다채로운 특기적성 프로그램과 대안 생태 체험 등 을 개설하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을 얻 었고, 각 분야에서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어 2011년 말 전남교육청 평가 결과 지역에서 유일하 게 최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100% 무상교육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여타의 작은 학교 성공사례와 달리 학부 모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학교 살리기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소통과 연대가 필수였다. 지극히 평범한 농촌지역 학부모들과 교 사들로 시작했기에 더욱 절박했고 서로가 소중했 던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교사·학부모 연 석회의다.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참여의 기회와 공 간을 확보해주고 스스럼없이 의견을 구하고 반영했 다. 학부모는 교사를 존중하고 그들이 소신껏 아이 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학부모 교육 지원단을 꾸려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 어떤 것으로든 아이들이 낙인 받지 않고 존중받는 행복한 학교로 만들고자, 입학 또는 새롭 게 전학 오는 학부모들과 위 내용을 담은 학부모 수 칙을 만들어 끊임없이 약속하고 공부를 했다.

 

 진정한 소통과 참여로 이루어지는 행복한 작은 학 교, 물론 다소 지루하고 인내를 필요로 할 때도 있지 만 3년의 과정 동안 어렵게 하나씩 이루어놓은 소중 한 성과들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작은 학교 이기에 가능했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약하여 수 평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고, 소통의 통로와 방법 등 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물론 행복한 작은 학교 만들기의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농촌사회의 어려움이 큰 제 약으로 작용했지만 더 컸던 건, 과거 두 번의 학교 통폐합 문제로 지역이 두 개로 갈라져 갈등과 반목 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그로인한 절망과 부정, 불 신은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게 했다. 학교 살 리기의 중요 주체인 교사들 또한 초기에는 별로 개 입하고 싶지 않은 골치 아픈 문제였기에 운영위원장 인 나를 피하느라 얼굴보기도 힘들었다. 교육청은 과거 통폐합 사건 이후 사실상 폐교의 수순을 밟고 있었고, 학교 살리기에 대한 반응도 없었기에 학교 살리기 2년 동안은 피를 말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어찌되었든 하늘이 감동한 건지 올해도 입학생과 전학생 문의가 폭주하여 학교 살리기 초기 12명에 서 이제 46명이 되었다. 물론 다른 일반 학교에 비 해선 적은 숫자이지만 교실 수 부족과 통학차량의 한계로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 없는 웃지 못 할 해 프닝이 벌어져 학교와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학교 살리기 4년, 속단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도 헤쳐 나가야할 과정이 수없이 많다. 더욱 내 실 있게 안착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들이 만들어져 야 하고 좋은 선생님들도 지속적으로 오셔야 한다. 그리고 현재 농산어촌 작은 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청, 지자체 의 발상의 전환과 실천이 필요하다.

  농산어촌의 수많은 작은 학교는 사실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보물창고다. 마음만 먹으면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 램 개발과 시행이 가능하고, 학교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합의 과정의 용이성과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환경 등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교 교육 을 정상화 할 수 있는 유력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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