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307호 교육적 목적을 상실한 채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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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5-12 16:03 조회1,0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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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목적을 상실한 채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늦게 퇴근할 것 같아" 전주의 한 특성화고 학생이 지난 1월 LG 유플러스 전주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중 졸업을 앞두고 차가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괴롭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에 죽음을 결행한 것이다. 문제가 된 이 업체에서는 2014년에도 한 노동자가 실적압박과 감정노동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며 “회사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다. 고등학교에서 애완동물학과를 전공한 고 홍수연 님은 2014년 자살한 노동자가 일했던 세이브팀(해지 방어 부서)에서 전공과 관련이 없는 현장실습을 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실시하는 현장실습제도는 교육적 목적을 상실한 채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이다. 그동안 많은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다치거나 죽어갔다. 이들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학교를 졸업하기 전 현장실습으로 조기취업 등의 형태로 노동을 시작했다. 둘째, 동료나 상사의 폭언 등 위험한 노동 환경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했다. 셋째, 8시간 노동, 주 5일제가 무시된 상태에서 혹사 당했다. 넷째, 숨지기 전까지 학교는 그들이 노동권을 침해당하며 위태롭게 일하는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그들의 죽음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다. 닮은꼴의 수 많은 혹사와 죽음이, 그리고 뒤늦은 대책과 도돌이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고된 사고는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장실습생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 제도에서 현장실습생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야간 노동 강요를 피하기어렵다. 현장실습은 학교가 시키는 대로 잘하는 학생이 피해나 손해를 보는 이상한 형태의 제도이다. 이는 현장실습에 나가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험 상황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도 크다.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야근을 시켜도 항의하거나 학교에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힘들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실습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실습생에게 금지된 야간 근무 중이었다는 성토가 이어졌고, 이번 LG 유플러스의 경우에도 감정노동을 시킨 것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과연 현장실습생에게 야간 근무만 빼면 괜찮은 것일까? 위험한 노동과 감정 노동을 시키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오히려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 감정노동을 해야 급여를 더 받을 수 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달프게 일을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익숙하게 하는 것이 현장실습이 진짜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닐까? 제대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실망스런 취업 경험이 될 뿐인 이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사업장의 질서와 속도에 익숙해지는 것, 철 드는 것,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며, 한마디로 ‘순응하는 근로자’가 되는 방법인 것이다.
특성화고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조기취업 또는 저임금 단순 노동력의 활용 통로로 악용되어 왔다. 1960년대 이후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3D 업종, 반도체 공장, 전자제품 조립 라인, 휴대폰 생산 라인과 영세 업체에 투입되었으며, 최근에는 감정노동에 투입되고 있다. 현장실습제도는 학교 수업 파행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3학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저학년 학생들까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할수 있도록 변질된 박근혜표 현장실습 제도인 ‘산학일체형 도제교육’은 더 심각한 제도이다.
현장실습생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실습생이라는 꼬리표에 갇혀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당해 왔고,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현장실습생들은 나중에 들어 올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힘들어도, 뭔가 잘못됐다고 느껴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한다. 의무적으로 견뎌야 하는 현장실습 그 자체로 현장실습생의 자율권을 억누르고, 직장 선택과 퇴사의 자유를 빼앗고, 부당한 상황을 참도록 강제하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일, 부당한 처우 등에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교사와 학교는 오히려 바람직한 취업도, 필요한 교육도 아닌 현장실습으로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 ‘취업률 경쟁’ 때문이다. 취업률 경쟁은 교육청, 학교, 교사, 최근 도입된 취업지원관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인기 없는 일자리와 부적절한 업체에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는 인력 파견업체 가 되어 가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서는 낮은 임금으로 쉽게 노동인력을 공급받는 제도이자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 지원금을 받는 수단일 뿐이다.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실습’,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에 있는 학생을 노동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현장에서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최소한의 지킬 것은 지키는 현장실습이 되어야 한다. 배울 것이 있는 현장실습, 앞으로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만한 경험을 제공하는 현장실습이 되어야 한다. 그런 현장실습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별 취업률 평가가 중단되어야 한다,그래야 교사와 학생들이 적절한 사업체를 취사선택하고, 최소한의 운영 가이드라인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체를 자유롭게 박차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현장실습보다 더 필요한 것은 노동인권교육이다. 취업을 몇 달 앞당기는 것보다 앞으로 평생 노동자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학생들에 대한 노동인권교육과 함께 교사와 관리자 연수 프로그램에 노동인권교육을 배치하는 등 교사들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특히 요구된다. 그리고 학부모들에 대한 노동 인권교육 계획도 수립되어야 한다.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에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삶을 담보로 작전을 짜듯이 취업률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에 적극 참여, 동조, 방치한 정부와 시·도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 학부모, 시민사회, 정치집단 등은 이제답변해야 한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시민사회가 나서서 교육부와 시·도교육감들에게 지금과 같은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은 당장 중단하고 그 대안 마련을 위한 테이블을 구성하자고 제안 드린다. 고장 난 자동차, 매뉴얼대로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안전사고가 잦은 자동차는 즉각 운행을 멈춰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가 있다.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고장 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현장실습제도의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
하인호 (전.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 교사,청소년 노동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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