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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245호 해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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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7-25 15:39 조회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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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한분이 집에 오셨다. 거실에 놓인 화분들을보시고 “바쁘신데 언제 이렇게 화초를 가꾸세요?”
“남편이 돌보는 거예요. 전 생명 있는 건 아이 하나 키우는 것으로 족해요.” 옆에 있던 아들이 냉
큼, “엄마가 나 키웠어?”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얼결에 “아니, 아기 때......” 하고 말꼬리를 흐리
고 만다. 손님이 가고 나서도 내내 키워준 은공을모르는 녀석의 말본새나 거기다 대고 호통을 치지
는 못할망정 비굴모드로 아기 때는 키우지 않았냐고 들이민 나 자신이 못마땅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아이의 말대로 아이는 내가 키운 것이 아니라 절로 자랐는지도 모른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한결이는 ‘소꿉’ 1기.늘 바쁜 부모 탓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녀석은 자
기 혼자 큰 줄 알고 큰소리 칠 정도로 자라버렸지만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눈물 바람이던 아이였다. 만 3살이 되던 해 세상 밖으로 나
가고 싶어 몸부림치던 내게 가장 큰 걸림은 육아문제였다. 남들은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가 돌봐 주시거나아니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지만, 아이를 맡길 경제력도 없어 갈등과고민이 깊었다. 또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돌봐주는 시
간이 짧아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과 능력을 요하는여성시민단체 활동가의 육아 문제를 해결해 주기에
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 좁은 실내 공간에 갇혀 있다시피 하는 어린이집 환경도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침 원주지역에 또래 아이를 둔 시민단체 활동가부모모임이 있어, 공동출자해서 어린이집을 만들자
는 논의가 있었다. 비용문제에 고민은 있지만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게 할 수 있고, 일을 하
면서도 충분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긴 보육시간과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문제도 해결되어 여
성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시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절로 해결되는 것이 없었
다. 직장을 마친 늦은 시간에 모여 아이들 악다구니와 난장판 속에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아마’활동과청소당번은 왜 그리 자주 돌아오는지, 집안 살림 걱정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소꿉’의 재정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날들은 소꿉을 선택한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놀이터에 가서 모래놀이조차 못하던 아이가 매일 흙투성이가 되어서돌아오고, 유난히 곤충과 벌레를 좋아해 남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뱀만한 지렁이를 반가와 하면서한때 곤충학자를 꿈꾸기도 하고, 사계절 흐름을 자연 속에서 느끼고 알아가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욕심이 비록 글자를 배우지도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초기에 받아쓰기 점수를 엉망으로
받아오기는 하였지만 계속 ‘소꿉’에 아이를 보내고지금도 주변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소꿉을 권유하
는 이유다. 아이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삶을산다는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내 핸드폰에 아이 전
화번호는 ‘해피맨’으로 입력되어 있다. 기타를 치고게임을 하고 TV를 보고 책을 읽으며 노래방에서 친
구들과 노래를 하며 산다. 행복하단다. 얼마나 다행인가.
용정순 (2002년 2월 졸업조합원)소꿉마당과 함께 살기 해피맨 제가 아이를 ‘소꿉’에 보내려고 했던 건 단수 높은 속물성인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유아 때부터우리말, 외국어 가르쳐 봐야 소용없다구! 자연을벗삼아 즐겁게 뛰놀아야 나중에 훨씬 더 훌륭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야!” 이런 속셈
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행복한 아이도 좋지만 재능 있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 욕
심이 날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소꿉’을 선택하게 한 유인으로 작용했겠지요. 사실
‘소꿉’이 가지는 큰 가치인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애초에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휴, 이 어린이집은
왜 이리 모임이 많은 거야!” 내심 투덜거렸고, 한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소꿉’ 청소는 귀찮은 일이
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매달 있는 방모임이나 ‘아마’활동이 쌓여가면서, 다른 아이들과 아이의 부
모님들을 알게 되면서 차츰 관심이 내 아이에서내 아이 친구들로 넓어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
느덧 제 시야에는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아이와 함께 ‘소꿉’ 친구의 생일선물을 준비
하면서 그 선물을 받을 아이 얼굴이 환히 떠오르는가 하면, 아파서 결석한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
작하는 겁니다. 내 아이가 물려받은 옷을 입었던아이, 내 아이가 물려줄 옷을 받을 아이 이야기를
아내와 나눕니다. 아이들의 기발한 명언이 온라인게시판에 올라오면 기특함과 뿌듯함에 절로 얼굴
에 웃음이 번지고, 넘어진 아이를 위로하는 아이사진을 보면서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감동을 주체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는 제 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
게 되었습니다. 만약 ‘소꿉’이 없었다면, 저는 이런경험을 영원히 가져보지 못했을 겁니다. 내 아이
만이 아니라 아이‘들’로 돌봄의 외연이 넓어지는경험, 나만이 아니라 여러 ‘아마’들이 내 아이를 보
듬어준다는 안도감, 나아가 ‘소꿉’을 통해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보다 많은 경제력을 비축하기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소꿉’에
보내는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워즈워드의 시구 “어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가 참으로 새삼스러웠습니다.햇님 (정재인 아빠)
부모를 바꾸는
소꿉마당
교육공공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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