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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83호 또 다시 수학여행을 시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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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7-22 17:28 조회1,2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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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세월호’는 단순한 배 이상의 것이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병폐가 집약되어 있었고 침몰 뒤 일어난 일들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꽃 같은 아이들 수백 명이 배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지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기에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분노, 그 자체였다.먼 길을 떠난 그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어느덧 다시 4월, 수학여행 시즌이 돌아왔다. 그 날 이후 수학여행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용어가 바뀌었다. 이제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는 없다. 대신에 ‘소규모 테마형 교육여행’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름에 걸맞게 규모는 한 팀당 학생 수 100명 미만을 원칙으로 하며 150명 이상은 아예 추진할 수 없도록 인원을 규정하고 있다. 방식도 바뀌었다. 교사와 학생이 토의·토론을 통해 다양한 체험 거리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우리 학교를 비롯한 몇몇 혁신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진행하던 방식이다. 우리가 남다른 -그리고 그만큼 교사들이 참으로 힘든- 수학여행을 고집하는 까닭은 그 안에서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배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배움의 과정, 수학여행
우리 학교의 수학여행은 6학년 교육과정의 하나이고 시기는 대개 9월경이다. 보통은 봄에 많이 수학여행을 떠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수학여행의 준비 과정이 족히 반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수학
여행의 시작은 학년 초, 공정여행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6학년 전체 아이들이 모여 강의를 듣는다. 수학여행의 시작이 되는 활동인지라 아이들의 관심은 높다. 이 강의를 통해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계획하는데 지켜야 할 원칙을 세운다. 방문하는 지역 사람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게, 그들이 직접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여행 경비를 지출할 것, 그리고 자연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여 여행이 생태적인 활동이 되게 할 것, 또 특색 있는 지역 문화
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 등이다.

이러한 기본 원칙 위에 아이들은 각자 여행 가고 싶은 곳을 정한다. 그러면 가고 싶은 여행지별로 자연스럽게 팀이 만들어진다. 평소 친해서 끼리끼리 어울리던 아이들도 가고 싶은 곳이 다르면 서로 헤어져 다른 팀에 들어간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생각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팀이 꾸려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구체적인 수학여행 계획을 세워 나간다. 이것을 학급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호응을 얻어내야 한다. 여러 가지 궁금증과 예상되는 문제들은 팀원들끼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해 간다. 방과후나 주말까지도 시간을 내어 서로 만나 계획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 과정에서 사회 과목의 우리나라의 지형과 산업·교통 발달을 알아보는 단원, 실과의 인터넷을 이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고 발표 자료를 만드는 단원, 국어 과목의 조사한 내용 분류하여 요약하는 단원, 도덕의 모둠활동을 통한 책임감 기르기에 대한 단원 등을 자연스럽게 공부한다.


학급에서 팀별 발표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곳을 학급의 대표 여행지로 선정하고 다시 6학년 전체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한다. 발표를 들으며 꼼꼼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체크하고 투표를 하여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수학여행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우리 학교의 수학여행지는 2012년은강원도, 2013년은 경주, 2014년은 다시 강원도로 결정되었다. 모두 자기 학급의 대표 여행지를 선호할 것 같지만, 실제로 투표를 해 보면 그렇지 않다. 각자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다.

여행지에 대한 계획이 결정되면 아이들은 미술 시간에 나만의 저금통을 만든다. 수학여행 경비를 한꺼번에 지출해야 하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용돈을 아껴 그 저금통에 수학여행 경비를 조금씩 모으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맞이한 6학년의 어린이날 받은 용돈이라든지 생일날 받은 용돈들이 고스란히 저금통 안에 들어간다. 또, 집에서 더 쓸 수 있지만 필요치 않게 된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필요한 이에게 싼 값에 판매하는 ‘되살림 장터’도 연다. 이 장터의 수익금 역시 차곡차곡 저금통에 쌓인다.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경제생활과 생태적 삶에 대해 배우며 수학여행 경비의 일부를 자기 힘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수학여행 때 입을 반별 티셔츠에도 스스로 로고를 새겨 넣는다. 각자 우리 학교와 학급의 특징이 잘 드러난 로고를 디자인하여 발표하고 그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하나의 작품을 선정한다. 무늬 없는 티셔츠를 단체로 구매하여 티셔츠 앞부분에 공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섬유용 물감으로 찍어낸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미술 수업이 된다. 기성품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해도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결정한 작품이기에 티셔츠는 빛난다.

수학여행 일정을 세밀하게 검토하는 과정도 필수다. 아이들이 계획한 코스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교사들이 직접 답사를 가보기도 하고 공정여행 강의를 했던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의논하고 다듬어 간다. 또한 코스 속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 등도 학급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우리 반은 정선5일장에서 음악 시간에 배운 리코더 연주를 공연하기로 결정하여 상설 무대를 빌려 공연하였는데, 구경하신 어르신들께 앵콜 요청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이 정도까지 마무리되면 비로소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다. 2박3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짧지 않다. 스스로 결정하고,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그 모든 것이 수학여행이 된다. 단순히 어떤 여행지를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
이제 하늘의 별이 된 그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참 잘 따랐다. 그것이 우리를 더 가슴 아프게 한다. 어쩌자고 그렇게 착해 빠졌던 걸까. 시키는 대로 착실히 따르는 것이 옳다는 가르침에 어쩌면 그리도 충실했던 걸까.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하라는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순종하라는 말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할까. 어떻게 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자라 훌륭한 시민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오늘도 ‘가만히 있지 않은 법’을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또 다시 수학여행을 시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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