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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240호 닉네임을 말하라 하면 ‘약방의 감초’라고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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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8-09 17:16 조회7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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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 말하라 하면 ‘약방의 감초’라고 하겠어요


본인과 가족을 소개하여주세요.
언젠가 저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잘 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머릿속에 든 것도 없고 논리도 없고 그렇다고 놀기라도 잘 하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해 낸 게 ‘약방의 감초’였어요. 제가 활동하는 단체들을 보았더니 교원노조, 국어교사모임, 학부모모임, 작가모임, 민예총, 민주노총, 민주화모임, 청소년지도모임, 연대모임, 온라인 모임, 계모임까지 합하니 16개나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모임 참석하기도 참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가족을 소개하자면 아직도 애교가 철철 넘치는 우렁이 각시와 이제 막 시집 간 딸내미와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인 아들이 있어요. 사실 아들딸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우리 회를 그만 둘 것으로 알았는데 자격 요건이 그 때마다 개정되어서 이젠 영구 회원으로 남을 것 같아요.

자녀를 키우면서, 특히 교육문제에 있어 보람을 느끼신 일이 있다면..

1989년에 전교조 문제로 해직이 되었어요.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을 맡게 되었지요. 설거지를 마치고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제 아침 일과였는데 어떤 때는 딸아이 머리를 따기도 했지요. 그런데 돌아올 때 보면 머리가 산발이었어요. 아이들 초등학교 때에도 학교는 제가 전담했었지요. 그때는 풍토가 그랬는지 학교모임에는 모두가 어머니였어요. 완전 청일점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워낙 낯짝이 두꺼워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학교모임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것이 교사와 학부모 관계였어요. 그리 협력적인 관계가 아니었어요. 교사는 학부모들을 피상적으로 바라보았고 학부모들은 교사들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생각해 보니 성적만 있고 교육이 없는 학교 풍토 속에서는 아이도 학부모도 교사도 피해자였던 것이지요. 그때 교사가 아닌 학부모로서 교육을 바라 보니까 학부모들의 고충이 확연히 드러나더라고요.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적인 관계가 빨리 회복되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면담이나 전화, 편지로 서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역할바꾸기 놀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지요.


자녀교육에 대한 나만의 교육관이 있다면..

항간에 저희 부부는 그래도 금슬이 좋다고 했고 저도 부부관계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녀 교육문제에 접하면 꼭 부부싸움이 일어났어요. 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서 스스로 자라도록 하자는 입장이었고 아내는 현존하는 입시교육 체제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고 틀어잡고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저는 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아내는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하니 중간에서 아이들만 헷갈리게 했지요. 지금은 아이의 상황에 따라서 교육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육관입니다. 아이가 적극적이고 스스로 문제해결력이 있을 때는 스스로 커나가도록 간섭을 줄이고 아이가 소극적이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할 때는 길을 찾을 때까지 부모나 학교에서 붙잡아 주어야 한다고 여겨져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참학에 참여하게 되셨는지요?

물론 저는 1989년 교육운동을 하면서부터 참학을 알았지요. 전교조와 참학이 가는 길은 같았으니까요. 2001년도에는 목포에도 참학을 세우자는 뜻을 가진 분들이 공부모임을 만들었지요. 그때에는 전남지역에 참학지회가 하나도 없어서 역사적 사명도 띠었지요. 그렇게 준비위원회를 꾸려서 1년 정도 전국모임에도 참석하고 토론회도 열면서 2002년 2월 목포지회가 창립되었고 전남에도 참학이 생기게 되었지요.

참학과 관계를 맺은 이후 보람된 일이나 어려운 점은?

목포에 참학이 생기면서 전남지역 교육운동이 활성화 되었어요.
학부모들을 위한 학교교육의 대안세력으로 발돋움했지요. 촌지 문제나 야간자율학습 문제도 짚고 학교운영위위나 급식위원회도 참석하면서 목포에도 참교육 학부모단체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켰지요. 그러면서 전남지역에 7개지회가 출범했으며 작년에는 진보교육감까지 탄생시키게 되어서 영광이지요. 그런데 어려운 점은 새 회원 확보 문제입니다. 집행부를 비롯한 회원들이 이제는 노쇠해져서 활동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새로운 피가 필요한데 잘 수혈되지 않아요. 중점 목표를 회원확보에 두지만 그게 마음같이 되지 않아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여겨져요.

우리 신문에 작년까지 <군말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시와 산문을 연재했는데 그 때 재미있었던 일화가 있다면?

시집 <나무 위의 여자>의 주인공이 제 아내이지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다가 그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어서 고마움의 표시로 그 시집으로 출간했지요. 그 시집의 시들을 풀이해서 <군말산책>이란 산문을 연재했는데 그러다보니 덕분에 50여 편의 산문을 모을 수가 있었지요. 아내는 연재를 불편해 했지요. 무척 부담스럽다며 괜한 일을 버렸다고 핀잔도 주었지요. 실제로는 당신한테 잘 해 준 것도 아닌데 잘 한 것처럼 보인다고 자기만 좋은 남편처럼 보이려고 쓴 게 아니냐며 따지기까지 했어요. 그렇지만 입으로는 불만이면서도 낯빛은 달랐어요. 하나도 화난 표정이 아니었지요. 사실 그 뒤로 아내가 더 많이 잘 해 준 것 같았어요.

그때 모 남성 회원은 그것을 금서로 분류하기도 했지요. 세상의 남편들이 아내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당신은 책꽂이 뒤에 짱박아 두고서 몰래 읽는다고 했어요.


본부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으시다면?

현재 지부, 지회의 고충은 사업방식이 새롭지 않고 신규 회원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회가 굳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개방적이고 신선한 방향에서 사업을 풀어나가고 새로운 회원들도 많이 들어와서 그들이 지부, 지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부, 지회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알고서도 자체 힘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본부에서 새로운 사업방식을 개발해서 지부, 지회로 내려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지역에서 새롭고 신선한 사업이 있다면 소개를 해 주어도 좋겠지요. 그리고 전국적인 차원에서 회원가입 운동을 벌여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테면 참학을 알리는 광고나 포스터를 기획해서 국민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좋겠지요.

그 밖에 하시고 싶은 말은?

참학을 활성화 시키려고 동아리 모임을 운영하려고 하나 잘 되지 않아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제 노력과 정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물론 여러 가지 모임을 나가다 보니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머리만 앞서지 몸이 따르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스스로 반성하면서 어서 빨리 젊은 피를 많이 수혈해서 구석구석 빈곳을 채워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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