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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306호 고통의 터널 속 가족을 밥상으로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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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4-20 17:20 조회1,0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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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터널 속 가족을 밥상으로 치유하다
치유 공간, 이웃


‘이웃’은 2014년 9월 안산 와동에 문을 열었어요. 참사 직후 아이를 잃은 가족들은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어요. 게다가 거의 모든 부모들이 길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고 있던 시기죠. 아이를 잃고 운신하기도 힘든 엄마, 아빠들이 길바닥을 헤매며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서명을 받았어요. 뙤약볕 아래 울면서 그렇게요. 때로는 “그만해라”, “시체팔이 하냐” 는 심한 말까지 들어야 했던 엄마, 아빠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어요.

 그러던 때라 ‘한 끼니라도 편안하게 밥 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마음껏 울기라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도 되는 그런 곳’이 정말 절실했어요. 아이를 잃고 고통의 터널에 갇힌 것만 같은 그런 부모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고, 같은 마음으로 울어주는 이웃들과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이렇게 ‘이웃’이 기획되고 만들어졌어요. 마을회관처럼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청마루, 집과 같은 그런 부엌이 있는 곳, 소담한 상담실이 있는 곳으로요.

 그중 가장 정성을 들이고 마음 썼던 부분은 밥상이에요. 아이를 잃은 것도 견딜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들어야 했던 엄마, 아빠들에게 세상 어떤 밥상보다도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그런 밥상을 드리려고 정성을 쏟았어요. 그런 손가락질과 비난이 없다 해도 대부분 엄마, 아빠들은 사실 밥을 거의 넘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음마저 위로가 되는 그런 밥상, ‘치유밥상’이 꼭 필요했어요. 마침 전국 각지에서 김치, 된장, 고추장이며 각종 식재료가 날마다 쏟아져 들어왔어요. 이런 정성 때문인지 ‘이웃’에서 첫 밥상을 받은 엄마, 아빠들 중에는 참사 이후 처음으로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웃’이 문을 열고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치유밥상’이랍니다.

 ‘이웃’에서 밥상을 준비하거나, 청소하고,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또는 생일모임을 준비하고, 사진을 찍는 그런 자원활동가들이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치유는 전문가 몇 명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없어요. 일상에서 다독이고 어깨동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봐줄 때 치유될 수 있는 상처죠. 그렇게 일상을 도닥이는 자원활동가들을 저희는 ‘이웃 치유자’라고 부른답니다.

 ‘이웃치유자’들은 대부분 아이 엄마들이에요. 세월호 참사 후 너무 슬프고 힘들어서 몇 날 며칠을 울다가 ‘이웃’을 알게 되어 오신 분들이지요. 처음에는 유가족과 눈도 못 마주쳐서 내내 바닥만 청소하는 분들,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할까 싶어 아예 주방 밖으로는 나오지도 못한 분들이 많았어요. 물론 지금은 유가족들과 둘도 없는 자매로 지내는 분들, 오랜만에 만나면 얼싸안고 안부를 묻는 분들로 가득 차요.

 3년 간의 ‘이웃’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생일모임>이에요.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날, 주인공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오직 그 친구만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는 모임이죠. 지금껏 56번의 생일모임을 진행했는데 56번 모두가 다 생생해요.
 <생일모임>은 대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해요. 가족들로부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과 아끼는 물건들을 받아서 숨결을 느껴보지요. 그리고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추억을 더듬어보고 모임에 초대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 친구를 찾기도 하고, 그 친구들과 함께 별이 된 친구에 대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이야기해요. 좋아하는 음식, 특이한 버릇, 에피소드, 학교 끝나면 뭐 하는지, 집에 놀러 간 적은 있는지, 집에 놀러 가면 뭐 하는지, 이 아이가 왜 좋은지……. 시도 때도 없이 물음과 대답이 오가며 그렇게 온전히 한 달 동안 별이 된 친구(동생, 아들 또는 딸) 이야기를 해요. 이런 시간을 거쳐 <생일모임> 당일, 아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동영상이 전시되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기억을 통해 아이의 삶이 더 생생히 떠오르고, 그리운 목소리를 시인이 대신 전해요. 별이 된 아이가 다시 우리 곁으로 오는 것만 같아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누구라도 그 아이를 잊을 수가 없어요. 생생하게 가슴 속에 남지요.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별이 된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일모임>을 할 거예요. 더 많은 아이들을 더 생생히 기억하도록.

 3년의 시간이 흐르며 아주 조금씩 엄마들이 일상에 진입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가족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밥을 챙겨주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기도 해요. 그러면서 닥치는 또 다른 숙제 앞에 안절부절 못하기도 하고요. 아이가 몇이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결혼식장에 예쁜 옷을 입고 갈까 말까. 아마도 유가족들은 매번 새로운 질문과 도전 속에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그렇게 넘어가야 할 산들을 넘겠죠.
 ‘이웃’은 이런 엄마들을 옆에서 조용히 도우려고요. 예전처럼 같이 울고, 웃고, 또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같이 욕도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3년이 지난 이제는 세월호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만이 아니라 안산의 여러 이웃을 돌보는 일도 하려고 해요.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또래 아이들, 친구를 잃고 밤마다 우는 자식을 보며 불안했던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 이웃 아이를 잃은 사람들, 참사로 아이를 잃은 친구에게 어찌 위로를 전해야 할지 몰라 속만 끓이는 사람들이 안산에는 넘치고 넘친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커다란 아픔에 고통받는 이웃들을 다독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꾸려나 가려고요. 그러면, 이 힘으로 안산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건강해지겠죠.

 세월호 참사 3주기에도 절대 잊으면 안된다는 다짐을 많이 하겠죠. 절대로 잊지 못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책하는 모습이 마음 아플 때가 있어요. 정말 잊으면 안 될 사람들은 다짐 따위, 강박 따위 갖지도 않는데 말이죠. 잘 되지 않겠지만, 자책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말 나쁜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으면 좋겠어요. 절대로 잊지 않을 ‘나’를 믿고 조금은 편안해 졌으면 싶어요. 그래도 늘 세월호 아이들과 함께할 거잖아요. 늘 기도해 주실 거잖아요. 때로는 거리에서 함께 싸워줄 거잖아요. ‘이웃’에 있는 엄마들도 늘 마음 포개주는 분들의 건강을 염려한답니다. 오래 함께해요, 우리.


이영하 (치유공간 이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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