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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244호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를 향해 내려온 동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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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7-25 15:53 조회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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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아라, 눈 감아라.”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에야’(air의 사투리)를 빼기 전에 물을 먼저 빼내는 보일러 시공자의 행동을 보고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께서 기도하듯 읊조린 말씀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물이 스며들어 땅 속의 벌레들 눈에 닿으면 눈이 먼다고 벌레들에게 눈을 감으라 일러 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쌍용자동차 징계해고자 김남섭의 아내 조은영입니다. 무심코 흘려보낸 뜨거운 물이 땅 속의 벌레 눈을 멀게 한다고 ‘눈 감아라’ 하시며 나지막히 귀뜸해 주시던 김용택 시인 어머님의 마음이 그리운 날들입니다. 세상의 살아있는 눈빛들에게 경고도 없이 뜨건 물을 붓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데, 제 남편을 비롯한 동료들은 최루액은 물론 테이저건과 동료가 새총으로 쏘아 댄 볼트에 눈이 멀고 가슴은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저와 남편, 세 아이 이렇게 우린 다섯 식구입니다.

꼭 3년 전인 2008년 12월부터 매주 수요일 아이들 옷을 단단히 입혀 작은 공원에 모여 촛불집회를 시작했습니다. 2009년 2월, 두 돌이 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이 채 못 되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이 시작되었고 남편은 동료였던 동지들과 옥쇄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저와 아이들은 아침이면 각자 직장으로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나가고, 11살이던 큰 아이가 7살과 3살인 동생들을 어린이집 차량 귀가시간에 맞춰 기다리다가 데리고 집에 돌아와 있으면 제가 퇴근하여 아이들 저녁도 못 먹이고 아빠가 투쟁하고 있는 회사로 향했습니다. 주말에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아빠 회사나 가족대책위 천막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하자마자 아빠 회사를 찾은 토요일 오후 회사 앞은 경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고 회사 안에서는 계속하여 구급차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한 아내가 제 손을 잡고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길래 놀라서 그런 줄 알고 손을 꼭 잡고 다독였는데 잠시 후 진정이 된 그 아내는 제 남편이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소방관에게 남편이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물어 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남편은 검사 중이었고 잠시 후 입원수속을 밟아 입원실에 올라가자마자 경찰이 연행하러 간다는 연락을 받아 뒷목과 머리를 가격당해 의식을 잃었던 남편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 병원으로 옮기고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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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세 아이를 둔 조합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는 말에 제 남편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렇게 우리는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서 많은 분들의 부상으로 이어진 77일을 끝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련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많은 동지와 가족들이 계속하여 이런저런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고 밤이면 악몽에 시달렸으며 ‘다음은 내 차례인가?’ 싶어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남편을, 아내를, 아이들을 향해 생채기 내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 앞에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를 향해 내려온 동아줄처럼 우리에게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정혜신박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분의 첫마디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였는데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치유였는지를 그날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날부터 오전에는 아빠들, 오후에는 엄마들을 모아 집단 심리 상담을 시작합니다. 제가 그 출발인 1기 상담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사실 일주일에 한번 모여 두어 시간 동안 상처투성이고 아픔이고 고통인 경험들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치유된다는 사실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박사님께 듣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너무 커서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의 고통 이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으로 인해 다양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데 이유를 물으면 자신도 모르겠다는 아이, 경찰버스의 충격으로 버스를 타지 못하는 아이, 아빠를 지키겠다며 장난감 칼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아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뛰어내리는 흉내를 내며 자살했다고 말하는 아이, 학교에서조차 친구들에게 “ 너희 아빠는 죽었지?”(해고되면 ‘죽은 자’, 해고되지 않으면 ‘산 자’라는 표현을 쓰던 때였습다.)라며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고, 선생님들로부터는 “공장 안에서 불법파업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말들 때문에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방안에 숨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부모의 치유와 함께 아이들의 치유도 굉장히 시급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엄마들이 서울을 오가며 회의를 하면서, 상담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자원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와락’의 주춧돌이 되어주신 ‘진실의 힘’ 어르신들께서 무럭무럭 자라라며 2천만원을 쾌척하여 주셔서 공간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나꼼수’ 방송을 통해 우리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말 기적처럼 많은 분들께서 아주 깊고 뜨겁고 큰 마음을 포개주시기 시작하여 태어난 공간이 와락입니다. 때론 많은 말보다 따뜻한 포옹 한번이, 슬며시 어깨를 토닥여주는 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 더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어 상처받고 고통받는 가족들을 ‘와락~’ 안아주고, 겨울철에 온가족이 아랫목에 이불 뒤집어쓰고 군고구마 먹던 어린 시절처럼 편안하게 누워 뒹굴 수 있는 와락이 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일구어낸 와락 안에서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함께 살자’ 했던 그 외침이 함께 나누고 베풀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널리널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조은영 (쌍용자동차 대책위)

모두 다 같이 소리를 내야 아름다운 연주를 배우며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를 향해 내려온 동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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