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공성 | 235호 ‘태어나서 처음 시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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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8-10 15:28 조회8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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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검정고시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검시합격증을 받는다 한들 그걸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 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사실 노들야학 에 다니면서도 배움 그 자체보다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를 사귀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다는 편이 솔직한 마 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교사 분들이 지금 너의 생각 이 그러하더라도 후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 취직을 하려해도 졸업장이 있어야하니 기왕 야학에 다니는 김에 시험에 한번 응시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권유하셔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제 예상과 달리 무척 기뻐하 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 지금껏 내 생각만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부모님이 내색은 안하시지만 나에 대한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였던 저에게는 검시에 한번 응시해 보자, 결심하게 된 것만도 큰 변화였습니다. 태어나서 시험이라는 것을 처음 겪어보는데도 저는 그날의 모든 상 황이 의외로 무덤덤하게 느껴졌습니다.
시험 당일. 어느 학생분께서 청심환이라도 한 알 먹고
오란 말에 다소 긴장되기도 했고, 사랑 선생님이 “형은
붙을 거야”하는 격려의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통에
용기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이 들기도 했습니다. 준호
선생님이 1교시 끝나고 쉬는시간에 제 대필자분이 미인이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저는 대필자분의 얼굴도
안 보고 무심하게 시험만 보고 나왔는데요. 사람들은 내게 그 사실을 말하면 혹시라도 내가 너무 떨려서 시험을
못 볼까봐 일부러 말을 안 해주었다 하더군요. 또 덕민형
말하기를 그냥 앉아만 있으면 대필자분이 (답을) 다 알려
준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시험 당일 제가 몇 문제를 못
풀고 있었더니 대필분이 손가락으로 보기 중에 하나를
찍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
알려주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그분이 “답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답을 알려 달라는 말로
들렸나봅니다. 전 ‘이런 짧은 소통도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기분이 착잡해지기도 했습니다.
참 시험 결과를 말씀드려야 하겠지요. 결과가 꼭 중요 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검시 결과는 쓰지 않으 려고 했지만 (어찌되었든) 열흘 후 은전 선생님으로부터 합격통보와 함께 “형 평균점수가 이게 뭐야~”라는 타박을 받게 되었답니다.
김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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