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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245호 부모를 바꾸는 소꿉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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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7-25 15:32 조회6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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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를 ‘소꿉’에 보내려고 했던 건 단수 높은 속물성인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유아 때부터
우리말, 외국어 가르쳐 봐야 소용없다구! 자연을벗삼아 즐겁게 뛰놀아야 나중에 훨씬 더 훌륭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야!” 이런 속셈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행복한 아이도 좋지만 재능 있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 욕심이 날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 ‘소꿉’을 선택하게 한 유인으로 작용했겠지요. 사실‘소꿉’이 가지는 큰 가치인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애초에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휴, 이 어린이집은왜 이리 모임이 많은 거야!” 내심 투덜거렸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소꿉’ 청소는 귀찮은 일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매달 있는 방모임이나 ‘아마' 활동이 쌓여가면서, 다른 아이들과 아이의 부모님들을 알게 되면서 차츰 관심이 내 아이에서 내 아이 친구들로 넓어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느덧 제 시야에는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아이와 함께 ‘소꿉’ 친구의 생일선물을 준비하면서 그 선물을 받을 아이 얼굴이 환히 떠오르는가 하면, 아파서 결석한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내 아이가 물려받은 옷을 입었던아이, 내 아이가 물려줄 옷을 받을 아이 이야기를아내와 나눕니다. 아이들의 기발한 명언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면 기특함과 뿌듯함에 절로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넘어진 아이를 위로하는 아이사진을 보면서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는 제 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소꿉’이 없었다면, 저는 이런경험을 영원히 가져보지 못했을 겁니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아이‘들’로 돌봄의 외연이 넓어지는경험, 나만이 아니라 여러 ‘아마’들이 내 아이를 보듬어준다는 안도감, 나아가 ‘소꿉’을 통해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보다 많은 경제력을 비축하기보다,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소꿉’에보내는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워즈워드의 시구 “어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fatherof the Man.)”가 참으로 새삼스러웠습니다.

햇님 (정재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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