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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84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탈핵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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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8-03 14:37 조회1,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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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짝사랑했고 3학년 때는 내 나름대로 세상의 이치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어른이라고 ‘아이들에게’ 뭘 더 아는 양 가르치려 드는 것에 대해 부담이 있다. 인생의 경험이야 패배와 포기의 연속이니 알려줘 봤자 희망을 꺾을 것 같고 지식이나 정보 정도가 도움이 될 텐데 섣부르게 아는 이가 어려운 말만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탈핵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온통 전문적인 용어와 숫자로 가득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능력의 한계를 이해해주시길. 

‘탈핵’은 희망의 언어다. 

“원전을 돌리지 말자고? 그럼 전기 쓰지 마!” 또는 “그럼 촛불 켜고 살아!”라고 소리치는 이들에 대한 희망의 주장이다. “우리는 핵발전소 없이도 전기를 쓰면서 문명을 향유하며 살 수 있다고!”

 

사실, ‘원자력’이란 말이 법률에 나와 있는 용어지만 과학적으론 틀린 말이다. 핵발전소를 개발한 서구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Nuclear Power Plant’ 즉, 핵발전소라고 말한다. 핵발전소는 우라늄 235라는 원자를 핵분열시킬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니까 핵에너지(Nuclear Energy)를 이용하는 ‘핵발전소’가 맞는 말이다. 핵분열 에너지를 ‘원자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원자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아니라 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니까.

 

그런데 왜 ‘원자력발전소’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이들은 핵무기 이미지와 핵발전소를 겹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핵무기와는 다른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핵무기 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발된 원자로(reactor, 반응로가 맞는 번역이지만 원자로가 일반 용어다.)를 이용해서 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한 고압증기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핵발전소에 사용한 핵연료인 ‘사용후핵연료’에는 핵무기의 원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을 거쳐서 사용후핵연료 안에 들어있는 핵물질들을 분리하면 핵무기 원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니 핵발전소와 핵무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름을 바꾼다고 본질까지 바뀌지 않는다.

 

원자의 핵이 분열할 때는 강력한 ‘방사선’이라는 에너지와 열이 발생한다. 태양이 태양광이라는 ‘빛’과 태양열이라는 ‘열’을 우리에게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태양광은 쬐이면 피부가 그을리는 정도이지만 방사선은 우리 몸의 세포 유전자를 파괴해서 사람을 죽게 하거나 각종 암에 걸리거나 심장마비나 안과질환 등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핵폭탄은 핵발전소의 연료로 쓰는 우라늄 235가 64kg이 들어 있었다. 나가사끼에 투하된 ‘팻맨’은 플루토늄 239가 6.2kg이 들어 있었다. 플루토늄 239는 우라늄 235와 238을 원자로에 넣어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방사성물질 중의 하나다. 이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살고 있는 일반 시민 수십만 명을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서서히 죽였다. 대부분 방사능 피폭이나 화상에 의한 것이었다. 한꺼번에 핵분열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급격히 높은 방사선과 뜨거운 열이 방출되고 엄청난 힘으로 폭풍이 몰아치면서 사람들이 불에 타서 사라지고 건물들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섬광이 비치고 높은 열로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그림자만 남은 곳도 있었다. 핵분열 원리를 이용한 핵무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파괴력을 가진 무기라는 것이 증명된 사건이었다. 핵발전소는 이런 핵분열 원리를 이용한 발전소이다.

 

그래서 핵발전소는 태생부터 그리고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다만, 핵발전소는 핵무기 폭발과 같이 동시에 급격한 핵분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이 생기면 핵무기의 폭발만큼은 아니더라도 급격한 핵분열반응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그런 경우다. 실험을 하는 와중에 핵분열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아 출력을 높인다고 핵분열 반응을 제어하는 제어봉을 빼내다가 갑자기 핵분열 반응이 급속도로 많아지면서 폭발한 것이다. 운전원이 문제를 인지하고 다시 제어봉을 넣었지만, 폭발에 걸린 시간은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방출된 수백종의 방사성물질은 금방 사라지는 것들도 있지만 스스로 핵붕괴해서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인 ‘반감기’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 가는 것들도 있다.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만 4천년이고 갑상선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오드 131은 반감기가 8일이다. 근육에 축적되고 온갖 방사능 질병을 일으키는 세슘 137은 반감기가 30년이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방출된 세슘 137은 아직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방출된 방사성 물질들은 바람을 타고 당시 소련 전방에 퍼졌고 북유럽을 돌아 남유럽까지 덮쳤다. 대기 중의 방사성 물질은 비가 오면서 땅을 오염시켰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 오염된 물에서 난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자란 동물도 오염되었다. 방사능에 피폭된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 4년 뒤 갑상선암 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핵발전소 사고의 저주는 29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동시에 3기의 핵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한 장소에 여러 기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가동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확인되었다. 이제까지 핵발전소 사고 대비는 한 기마다 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동시에 여러 개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다. 지진이나 쓰나미 등 자연재해는 핵발전소가 있는 부지 전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3월 현재 전라남도 영광(한빛), 부산 고리와 울산 신고리, 경주 월성과 신월성, 경상북도 울진(한울) 등 4개 부지에 23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5기가 건설 중(신월성 2호기는 시운전 중), 6기가 계획 중이다. 이에 추가해서 경북 영덕군과 강원도 삼척시가 신규핵발전소 부지로 2012년에 지정고시되었다. 오는 6월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들 신규핵발전소 부지에 들어설
추가 핵발전소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로도 단위면적당 핵발전소 설비밀집도가 세계 최대인데
앞으로 밀집도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 중인 핵발전소까지 고려하면 한 장소에 동시 운영 중
인 핵발전소 기수와 설비용량은 기존 4곳의 핵발전소 부지 모두 세계 10위 안에 모두 속한다. 경북 울
진이 8기로 1위, 부산과 울산에 걸쳐있는 고리, 신고리가 8기로 2위, 전남 영광(한빛)이 6기로 7위, 경주 월성, 신월성이 6기로 10위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다. 핵발전소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런데 한 곳에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다. 그만큼 핵발전소 사고 위험도 높고 사고가 발생한다면 인명피해, 재산피해도 막대할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반경 30km 주민들이 피난을 갔다. 사고 당시 방사성물질을 실은 바람이 북서쪽으로 불면서 북서쪽으로는 50km 주민들도 피난을 갔다. 그렇게 피난을 간 주민들이 15만 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리핵발전소 주변 30km 내에 약 340만 명이 살고 있고 월성핵발전소 주변에는 130만 명이 살고 있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인구밀도가 높아서 사고 시에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마련이 매우 어렵다. 

국가 운명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도 정부가 원전 확대 정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앞으로 전기를 너무나 많이 쓸 거라는 전제다. 그리고 둘째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거다. 즉, 우리가 전기를 앞으로도 너무나 많이 쓸 것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는 아직 부족하니까 원전이 없으면 우리는 전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첫째, 둘째 모두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지금도 1인당 전기소비가 일본, 독일을 훌쩍 뛰어넘고 있을 정도로 전기과소비 국가이다. 경제수준으로 비교하면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그만큼 정책과 기술을 통한 효율과 절약으로 전기소비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정전 대비 훈련을 할 때 효율기술을 적용하거나 기계를 바꾸지 않고 절약 행동만으로도 원전 6기~8기 분량의 전기를 줄였다. 전력난이 발생하는 때는 일 년의 일주일 정도의 한여름과 한겨울의 냉난방 전기소비 급증에 의한 것이라서 건물 단열에 투자하고 규제하면 일자리도 늘고 전기소비도 줄일 수 있다. 전기요금이 너무 싸서 전기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고 전기로 고철을 녹여서 철을 만드는 일부 업체들의 전기 과소비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높은 편이다. 2011년에 발간된 신재생에너지 백서에서는 우리나라의 태양광에너지 현재 기술적 잠재량은 2030년 우리나라 전체가 쓰는 에너지의 세 배가 되는 양이라고 알려준다. 풍력, 바이오매스, 지열 등을 더하면 8배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에너지원은 없지만 재생에너지는 매우 풍부한 나라인 셈이다. 

원전은 줄일 수 있고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높은데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에서 꼴찌다. 문제는 정책과 투자다. 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서 수백조 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싼 전기요금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게 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정부가 할 일이다. 전기요금에 세금을 매겨 거둬들여 다시 에너지효율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면 경제도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발전소도 송전탑도 더 지을 필요도 없고 온실가스도 줄어든다. 1석 5조의 효과다.

 

우리는 지금 핵발전소 전기 비중이 30%이다. 독일이 탈핵 결정을 하던 2001년 핵발전소 전기 비중이 30%였다. 그런데 작년에 독일의 핵발전소 전기 비중은 15%로 줄어들었고 재생에너지 전기 비중이 4%로 늘었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우리는 5년간 4대강 사업에 22조 원의 세금을 낭비했다. 독일은 2010년 한 해만 재생에너지에 41조를 투자했다. 에너지 대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2050년이면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필자의 나이가 될 거다.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상상하지 못하던 게 우리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이다. 상상을 해보자. 2050년에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발전소를 먼 곳에 지어서 송전탑으로 전기를 실어올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거다. 스마트 폰처럼 작은 기구로 태양광 전기를 즉석에서 만들고 저장해서 필요할 때마다 쓰게 될 거다. 그리고 데이터 나누듯 전기를 서로 나누는 세상이 올 거다. 생산하는 전기의 80% 또는 100%가 재생에너지로 공급될 거다. 탁핵은 그런 희망 세상의 첫걸음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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