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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277호 세종, 한글, 그리고 오늘날의 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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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1-11 15:47 조회9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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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랏말ㅆ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에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취지가 나타나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세종이 백성들이어려운 한자로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쉽게 배울 수 있는 소통의도구로서 한글을 만든 것이다.입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굳이 소통의 도구가 더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문자가 단순히 입말을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똑같은 문장을 말로 듣는 경우와 눈으로 읽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눈으로 읽는 경우가 훨씬 더 시간이 단축된다. 단축된 시간동안 사람은 그만큼의 생각을 할수 있다. 게다가 말은 듣는 상황에서 한 번 지나가 버리면 소멸되어 버리므로 정신없이 말을 쫓아가기에 바쁜 데 비해, 눈으로 읽는 글은 언제나 지면 위에 남아있기 때문에 생각을 좀 더 느긋하고 깊게 할 수 있다.

 

 쓰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쓸 때에는 말할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심사숙고해 가며글에 담을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을 가다듬을 수 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의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문자 활동이 사람의 생각을 더 깊고 넓게 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이처럼 글을 읽고 쓰는 활동이 곧 고도의 사고 활동으로써 세종이 문자를 만든 것이 곧 백성들에게 생각의 도구, 더 나아가 나랏일에 대해 주체로써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을 준 것이며 결과적으로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근대까지 오면서 시민들이 민주주의 사회에 능동적 참여를 하게끔 기본 소양을 지니게 된 것이다. 즉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한글을 깨치게 하는 문자 습득을 넘어 문자를 통해소통을 잘 할수 있게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학습자들의 사고력 신장을 지향해야 한다.그러나 불행히도 요즈음 학교, 특히 고등학교에서이루어지는 국어교육의 모습은 읽고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책과 같이 호흡이 긴 글을 읽으며 넓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 대비용의 짧은 지문을 읽으면서 주어진 선택지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데 특화된 사고를 하고 있다. 또 글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는 일은 논술 전형을 실시하는 일부 대학의 지원자들이나 가끔씩, 그것도 많은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여 경험한다. 그나마도글에 담기는 것이 ‘자신의 뜻’인지 ‘좋은 점수를 받을만한 생각’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런 것들이 그 자체로서 무가치하다거나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국어교육을 통해서 다루어야 할 사고력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한글날만 되면 요즈음 아이들의 언어생활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를 낸다. 주로 욕설,비속어, 은어, 외래어 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든가 맞춤법 실력이 형편없다든가 하는 말들이다.이러한 문제들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정작중요한 것은 오늘날 이루어지는 입시 위주의 국어교육이 유발할 수 있는 병폐이다. 말글에 대해 주체적판단을 하지 못하고, 말글을 통해 자기의 뜻을 온전하게 펼쳐 내지 못하는 백성이라면 정치권력이나 언론권력과 같이 말글을 현란하게 다루는 권력 집단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모습이 ‘어리석은 백성’을 걱정하던 세종이 진정으로 바라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박종훈 (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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