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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77호 유신체제와 국정 한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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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1-11 16:00 조회1,0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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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 국정 한국사 교과서 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다른 듯 닮은 쌍생아

 작년 8월 말부터 반 년 가 까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 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 러웠다. 이 책은 사실왜곡 과 편파해석이 너무 많아서 교과서로 쓰기에는 부실한 잡서라는 것이 학계와 교 육계의 공통된 평가였다. 대다수의 국민도 이러한 평가에 동의했다. 온갖 편법과 특혜로 교학사 교과 서를 밀어붙이던 박근혜정권의 역사 쿠데타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박근혜정권은 역사교육의 국가통제라는 헛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아예 한국사 교과서를 유신체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정제로 바꿀 것을 시도하고 있다.교학사 교과서에 가득 찬 사실왜곡, 편파해석, 자 료조작 등 여러 문제의 뿌리는 유신체제의 국정 교 과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 교과서라기에는 낯이 뜨거울 정도로 특정 인물(주로 권력자)과 지배세력 을 찬양하는 서술,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아예 눈 을 감거나 폄하하는 서술, 반공·반북으로 한국 근· 현대사를 재단하려는 서술, 이미 학계에서 공인된 사실과는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역사를 짜깁기하는 서술은 국정 교과서나 교학사 교과서가 쌍둥이처럼 닮았고, 오십보백보이다. 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수준 낮은 홍보책자에 불과하다는 것 이다. 전자가 박정희정권 홍보책자라면 후자는 친일 파와 독재권력 전반의 홍보책자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유신체제 국정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실려 있었나? 

 박정희정권은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1인지 배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1972년 10월 유신과 99% 이상의 지지가 보장된 간접선거제도를 통해 법과 제 도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1인지배체제를 확립했지 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바 로 그것이다. 박정희정권은 저항을 막기 위해 국민의 의식개조를 도모했다. 1968년 말 국민교육헌장을 만 든 것이 그 시초였다. 국민교육헌장을 바탕으로 유신 이데올로기를 일반국민은 물론, 자라는 세대에게 주 입시키는 일련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직후 국사교육 강화를 들고 나온 것도 그 일환 이었다.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국사과목 교육과정 개 편과 교과서 발행제도의 전환 논의가 시작되었다. 원래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발행은 검정제였 다. 그런데 박정희정권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하나 의 역사인식만을 담은 단 한 권의 교과서를 국정으 로 내려고 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반 대했다. 국정화는 경직된 역사인식을 조장할 것이고 일부 내용이 정권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 이 반대의 이유로 거론되었다. 그러자 박정희정권은 국정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국사과목의 예비고사 필 수화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금 박근혜정권이 그러는 것처럼 대학입시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연계시키려고 한 것이다. 결국 1974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강 행되었다.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밀어 붙인 것은 대통령의 의지가 국가의 의지와 동일시되 던 유신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신체제에서는 1974년과 1979년에 각각 국정 교 과서가 발행되었다. 두 교과서는 모두 ‘박정희를 위 한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의 교과서’였다. 5단원 현대 사회 가운데 5·16군사쿠데타 이후의 서술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부분은 교과서의 서술치고는 이례적 으로 길고도 자세하다. 쪽수로만 무려 4쪽 이상이고 내용은 더 심각했다. 이를테면 1974년판과 1979년 판 모두 5·16군사쿠데타를 ‘5월혁명’으로 미화한다. 아예 ‘박정희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 운운하는 서술도 보인다. 교과서에 ‘장군’이라니? 교 과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정권에 충성하는 것만 을 생각하는 사람이 쓸 만한 표현이다. 1974년판과 1979년판 사이에 서술기조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74년에 있었던 7·4남북공동 선언 이후 남북대화가 중단된 것을 반영해 북한을 비방하는 긴 서술이 추가된 것 등이 그나마 눈에 띠 는 변화이다. 박정희정권에 관한 긴 서술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정권예찬으로 넘쳐난다. 당연히 한일 협정반대운동, 유신반대운동, 박정희정권의 인권탄 압에 대한 서술은 완전히 빠져 있다. 빠진 것은 또 있 다. 대한민국의 국민 이야기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다. 1961년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정희 1인 또는 박정 희정권만이 존재할 뿐이다. 교과서의 서술만 놓고 보면 박정희정권은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무오류 의 완전체 정권이다. 부패도 일소하고, 경제도 성장 시키고, 국민의식도 개조하고, 남북대화도 주도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도 정립해 나가는데 누가 감히 박정 희정권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러한 정권찬 양 역사서술이 의도하는 바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유신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함으로써 유신독재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담보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정 교과서의 서술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는 박정희정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유신도 종언을 고했다. 국정 교과서의 서술이 맞는다면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정권 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 이유를 전혀 설명할 수 없 게 된다. 그 때문이었을까. 박정희정권에 이어 등장 한 또 하나의 군사독재정권인 전두환정권조차 1982 년에 펴낸 국정 교과서에서 ‘박정희정권의 장기 집권 적 징후’로 ‘정치적 불안’을 언급함으로써 유신체제 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민족의 역사인가 아니면 정권을 위한 역사인가?

 국정 교과서에서는 민족사를 역사적, 주체적, 발전 적,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민족사는 초역사화 된 민족의 역사이다. 교과서 곳곳에서 맥락과 무관하게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민족이니 우리나라니 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와 민족을 초 역사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와 민족의 신성성 을 강조해야만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과 복종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정 교과 서의 말미에 박정희정권에 대해 길게 예찬한 것에서 도 알 수 있듯이 충성과 복종의 대상은 결국 박정희 로 귀결되었다. 박정희정권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운, 그리고 국정 교과서에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민족중흥이란 결국 국가 곧 박정희정권이 대해서는 일체의 이의를 제기 하지 않고 명령에 따르는 군인들처럼 유신체제에 순 응하도록 학생들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국정 교과서 어느 곳에서도 근대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도 박정희정권 의 지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교과서는 성전(聖典)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학습 교재일 뿐이다. 1970년대에 이미 많은 역사교육학자 와 교사들이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정 권은 교과서가 학생의 역사인식을 통일시키는 성전 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특정 정권의 지배 이 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가 된 국정 교과서의 운명 은 너무나 뻔하다. 유신체제로부터 수십 년이 더 지 나 다원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된 오늘 날, 국정 교과서를 통해 지배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 게 주입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21세 기는 더 이상 유신시대가 아니다. 하나의 역사인식 만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최 소한 검정 교과서 제도는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 동이 거둔 소중한 결과의 하나이다. 검정을 부정하 고 국정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민주화운동을 부정하 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박정희의 죽음과 국정 교과서 의 운명에서 조금이라도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면 국 정제로의 회귀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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