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도 좋은가, 정말 이래도 좋은가 갈돕살이(galdob)
최근 박경리 원작 '토지'가 드라마로 각색되어 시청자들로부터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듯 하다. 지금 그 토지를 책으로 지난 12월부터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나는 이제 겨우 절반을 넘어가는데, 가끔씩 드라마로 보는 '토지'는 원작과 조금은 달라 사실 더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책만 꾸준히 보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 심정과 딱 일치하는 작은 제목이 10권에 나와 있어 그 제목을 가지고 답답한 마음을 얘기하고 싶다. 토지 10권이면서 제3부 제2권이자 제2편 8장의 제목은 '이래도 좋은가'다. 기화의 기둥서방(?)인 이상현이 세상의 변화와 독립군인 아버지, 그리고 어설픈 기자와 소설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내뱉는 '이래도 좋은가'는 정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하고 너무 똑 같다. 얘긴즉슨, 또 다시 '일제고사'때문이다. 며칠 전에서는 교육청으로부터 '지필고사를 학기당 몇 번 치루고 있냐는 것과 가정통신문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지, 심지어 가정통신문 양식까지 교육청으로 우송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작년까지만해도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이러한 지필평가에 대한 교육청의 집요한(?) 관심은 상부교육청의 눈치를 늘 살펴야 하는 관리자들에게는 마치 '중간교사, 기말고사'의 횟수를 늘이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한편, 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나는 우리 학교 교장, 교감선생님을 설득해 올해 우리 학교에는 필요없이 지필평가 횟수를 늘이는 일은 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교육청 주최로 연수를 다녀온 교감, 교장선생님의 입에서는 '교육청에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간고사 등 지필고사 횟수를 늘이는 것이 전국적인 추세더라'며 은근히 일반학교에서 당연히 시험횟수가 늘어가는 것이 시류에 동참하는 것처럼 얘기해 마치 내년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5월 중순쯤 중간고사를 치룬다고 한다. 평소에 시험에 대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우리 아이가 보여 준 모습은 시험이 있어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험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재미있게 공부하고 모르면 다시 하면 된다라고 격려를 해 주는 것 뿐이었다. 며칠 전 조성실 선생님께서 '답답한 마음'이라는 교육에세이 속에서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는 모습을 묘사하신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 학교도 다르지 않다. 75학급의 거대 공장학교에서 하교시간 30분정도를 제외하곤 퇴근때까지 축구하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다니 참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우리 학교엔 중간고사를 치루지 않는데도 3천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학원을 전전하며 학력배양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학력향상이며, 누구를 위한 공부인가. 답답한 것은 이런 마음을 좀처럼 우리 동료 선생님들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느끼지 못할 뿐더러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제 우리 동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은 불필요한 시험 횟수로 우리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말과 우리 학교는 그나마 기말고사만 유지하고 있다는 말에 실로 엉뚱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기말고사만 치면 아이들이 한 번에 시험칠 양이 많아지겠네요. 아이들이 힘들겠는데, 그럴바에야 중간고사를 치뤄서 한 번 시험칠 양을 줄여주는 게 낫지 않나요?" "우리 나라는 어쩔 수 없지 않나요? 학부모도 원하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 우리가 그런 요구를 어디까지 막을 수 있죠?" 조성실 선생님이 얼마 전 언급하신 것처럼 제7차 교육과정은 그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수업관, 평가관에 대한 일대 전환을 불러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평가에서 있어서 결과로만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학습력을 키워 올려 궁극적으로 학습에 대한 흥미를 얻게 하는 것은 일선 학교현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컸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현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현장과 맞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그에 따르지 못했고, 무엇보다 학교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의식은 여전히 70-80년대식 학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여전히 그리고 굳건히 학력지상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보수언론의 힘에 의해 대학간판의 위력이 능력주의를 앞서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 학부모들이 자식교육의 새로운 전망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선 학교 교사들도 수업에 대한, 평가에 대한 사고가 그 이상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놀라운 것은 신규교사들이 아이들의 학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숙제로 다음 학년 수학문제를 미리 풀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교육대학은 이들에게 무얼 가르쳤는지, 우리 선배들은 무엇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상당수는 지필고사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아마 학부모들은 그 이상일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는 이러한 점을 가만하여 그들에게 설문을 굳이 하지 않았다. 일단 막고 올 일 년, 그들과 대화를 통해 진정 아이들을 위한 평가가 무엇인지, 수업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몇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앞 뒤가 꽉 막혀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의외로 그 벽이 높았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로 설득할 수 있었던 관리자보다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전교조는 '교사평가'를 막아내려 전국에 서명지를 돌리고, 분회장을 독려하여 분회장 총회를 갖게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명 졸속적인 교사평가를 막아내는 것이 우리 교육의 한 축을 지키는 것이 분명하고 교사들의 교권을 지키는 것임은 알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일제고사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 시점에서,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구원해줄 낮은 외침은 찾기 힘들어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홀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나와 같은 교사들이 조금 더 힘을 내고 당당하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는 날은 언제일지 모르겠다. 이럴 때 늘 '이성은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되새기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정말 세상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이래도 좋은가, 정말 이래도 좋은가. - 자료 _ 우리교육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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