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협상, 아직 희망은 있다
2004-11-22
김성훈 중앙대 교수ㆍ경실련 대표
또다시 대규모 농민시위가 엊그제 수도 서울을 뒤덮었다. 쌀시장 추가개방 협상에 앞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라는 주장도 포함 돼 있다. 국제협상에 있어 국리민복(國利民福) 추구와 국민적 합의는 아주 중요하다.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금물이다.
‘개방대세’ 주장하는 저의는 정부가 한 연구원의 습작(習作) 수준의 가상 시나리오를 근거로 삼아 관세화(완전개방) 유예(부분개방) 여부를 판단하려는 협상태도는 참으로 위험하다. 줄곧 개방대세론만 내세우는데 따른 의혹과 반대가 거세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에서 관세율 상한선(ceiling) 등에 대한 원칙이 타결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관세화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저의가 심상치 않다. 두 갈래로 현재 진행 중인 WTO 두 협상은 농민이 그 일차적인 피해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존권과 나라의 식량주권 그리고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의 훼손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올해 안에 쌀 재협상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2005년부터 무조건 관세화(완전개방)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UR 협정엔 2004년 까지 이해당사국끼리 쌀 재협상을 한다고만 돼 있을 뿐, 협상 결렬 때의 처리 규정이 없어 WTO 측도 내심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WTO는 문제를 분쟁조정위에 넘기거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처리할 수밖에 없다. ‘2005년의 자동관세화론’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배경이 궁금하다. 마치 한·중 마늘협상 밀실 합의 때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억지에 밀리는 협상력 국민소비량의 4%까지 부분개방한 UR 협상 때 적용했던 기준치(1986~88년 소비량)를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해 2015년까지 8~9%를 의무수입하겠다는 식으로 협상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금 국민 쌀 소비량은 1986~88년 때보다 훨씬 줄었다. 당시의 소비량 8~9%는 현 시점에서 12~14%에 해당한다. 그만큼 실제 수입량은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쌀 재협상 때 맨 먼저 20년이 지난 기준연도를 최소 10년은 앞당겨 1996~98년의 국민소비량이 기준이 되게끔 협상해야 한다. 중국이 억지를 쓰기 때문에 아예 완전개방(관세화)하겠다는 태도는 지나칠 만큼 성급하다. 일단 10년 더 관세화유예 입지를 확보해 놓고 앞으로 전개될 DDA 협상추이를 지켜본 다음, 관세화(완전개방) 여부를 결정해도 전혀 늦지 않다. 그것은 수입국의 권리이다. 다만 이때 수입쌀에 적용할 관세상당치(T.E.), 즉 관세율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19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은 기준연도(1986~88) 기간 중 전혀 해당품목을 수입한 경험이 없는 나라의 경우, ①유사품목의 국내외 가격차이, 또는 ②인접 국가의 쌀 관세상당치를 차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관세화를 택하게 될 경우 일본의 사례를 원용해야 한다. 일본 수입억제 거울 삼아야 일본은 1999년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1988~89기준연도 기간 중 태국산 싸레기쌀 4백톤을 수입한 적이 있음을 활용, 당시의 국내외 가격차이였던 1300% 상당치를 관세율의 근거로 삼았다. 물론 그때까지의 의무수입량 7.2%는 계속 수입한다는 조건은 유효하다. 그중 상당량을 미국에서 들여 올 것임을 이면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국민소비량의 7.2%만 의무수입하고 첫 해(99년) 관세상당치는 지난 6년간의 감축률을 제한 1100% 수준에서 관세화 하였다. 이같이 높은 관세상당치 하에서 추가 수입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요컨대 일본의 관세화는 표면상 자유화이지 실상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장치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당국은 396% 관세율 적용을 내비치고 있는데 그 근거가 극히 모호하고 위험하다. 끝으로 1995년부터 중국이 WTO에 가입코자 애쓸 때 우리 정부는 하찮은 조건만 달고 앞장서 동의해줬던 사실을 이번 협상대표단이 얼마만큼 중국당국에 상기 시키며 협조를 요청했는지도 의문이다. 매년 5000만톤 안팎의 식량 대수입국으로 전락할 중국에 대하여 앞으로 같은 식량 부족국끼리의 공조체제 중요성을 얼마나 설득했는지도 의심쩍다. 의혹 씻어야 농민 설득 가능 이런 의혹들에 대한 명쾌한 해명과 과오에 대한 수정의지가 선행되지 않고 개방대세론만 갖고선 농민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각종 단기대책 처방들이 겉돌고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기에 정부 당국은 더 늦기 전에 쌀 재협상 내용을 전면 재검토, 재정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WTO 규정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 우리 쌀과 농산물의 학교 및 군 급식 제도화, 이미 법으로 정하고 있는 식량자급률 목표설정 발표,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한 획기적인 친환경 유기농업정책 실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미곡종합처리시설(RPC)의 현대화 지원, WTO가 허용하고 대통령이 공약한 농업인에 대한 소득수준 20%의 직접지불제도 확충 등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한번 실패했던 농지·농업구조·국제경쟁력 대책을 재검토해봐야 한다. 차제에 과거 각종 농업협상 때마다 실패와 실망만을 안겨준 비전문의 소극적 통상외교 조직에 대하여는 해체 수준의 개혁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제1715호/ 사설칼럼
한국농어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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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협상 희망은 있다(전국급식운동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