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 분회모임에 참석하다> -지요하- <1> 지난 25일 저녁이었다. 학교에서 퇴근해 온 아내와 함께 걷기 운동을 했다. 냉천골 쪽으로 가서 백화산의 본산과 지산 사이 등성이까지 올랐다가 돌아올 때였다. 냉천골에 있는 한 음식점 근처를 지나면서 아내가 말했다. "내일 저녁에 저 음식점에서 모임이 있어요."
"이번엔 또 무슨 모임이야?" 교직 생활을 하는 아내는 종종 저녁에 회식을 했다. 아내의 지나치게 풍성한 몸매는 비교적 잦은 저녁 회식과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일 또 모임이 있다는 아내의 말에 불만 섞인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교조 모임이 있어요."
"전교조 모임이 있다구?"
"우리 학교 분회 모임인데, 오랜만에 갖는 모임이에요." 나는 잠시 침묵을 했다. '전교조'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안겨 준 파장 때문이었다. 일순 가슴이 짜르르 하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있었다. 1999년 전교조가 합법 단체가 되기 전부터 전교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전교조에 가입하라는 내 권유를 아내는 순순히 따른 것이었다. 아내로부터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전교조 분회에 관한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모임에 관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 모임에 대한 관심도 실은 없었다. 그러다가 아내에게서 전교조 모임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갖는 모임이라고 했지?"
"정말 오랜만에 갖는 모임이에요. 얼마 만에 갖는 모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을 만큼…."
"왜 그렇게 됐지?"
"잘 모르겠네요, 왜 그렇게 됐는지…."
"전교조 참여나 활동에 대한 분회 교사들의 의지가 너무 박약한 탓은 아닐까?"
"실은 그래서, 그것에 대한 자각 때문에 내일 모임을 하자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당신 학교 전교조 분회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다 반갑네. 내가 왜 이리 반갑지…?"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여보, 당신 학교 전교조 선생님들의 내일 모임에 나도 참석하면 안 될까?"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교사는 아니지만, 전교조에 참여하는 교사의 남편으로서, 전교조 선생님들의 얼굴도 좀 보고 싶고, 술 한잔 같이 나누며 격려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전교조 선생님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도 갖게 되고, 정도 느껴질 것 같아서 말야. 옛날에 대한 그리움, 일종의 향수 같은 것도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그러자 아내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내가 내일 학교에 가서 전교조 선생님들께 얘기해 볼 게요. 모두들 좋다고 하시면 전화할 게요."
"고마워요."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아내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잠시 옛날 일을 추억해 보았다. <2> 1991년 6월 우리 고장 태안의 남면에서는 매우 특별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이른바 '서남중 사태'라고 불린 사건이었다. 다수의 학부모들이 일부 교사들을 '의식화 교사'로 지목하여 교단 퇴출을 요구하며 집단 난동을 부린 사건이었다. 학부모들은 여러 날 동안 학생들의 등교를 막고, 교정에다가 갖가지 현수막을 걸고, 더러는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며 농성을 했다. 의식화 교사로 지목된 여섯 명의 남녀 교사들을 교무실에서 끌어내어 현관 앞에 세우고 전교조와의 관계를 물으며 인민재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서남중 사태가 진행되는 여러 날 동안 매일같이 현장으로 달려가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경찰 지서장의 안보 강연에 한 교사가 질의를 한 것으로부터 발단이 된 사건의 전모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의 과격한 행동을 만류하고 제지하다가 심한 야유와 폭언을 듣기도 했다. 91년의 서남중 사태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촉진시켜 온 진보적 가치관과 군사 독재 정권의 유지로부터 심화된 냉전 사상에 기반하는 왜곡되고 굴절된 가치관이 첨예하게 충돌 현상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 현상의 축약도인 셈이었다. 그때로부터 4년 후인 1995년 11월, 나는 다시 한번 서남중학교의 교정을 밟았다. 서남중학교에서 마련한 제3회 '서남인의 밤'이라는 이름의 예술 잔치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 특이한 감회가 있었다. 시낭송과 음악 발표로 이루어진 1부 행사의 첫 순서인 '여는 시'를 두 남녀 학생이 낭송을 했는데, 시 가운데 나오는 '남누리' '북누리' '하나된 온 누리' 등의 시어들이 각별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91년 서남중 사태 당시 해당 교사들이 통일 갈망과 관련하는 그런 낱말들이 들어 있는 노래를 가르쳤다는 것 또한 학부모들이 얼마나 큰 문제로 삼았던가! 지금의 학부모들 중에 그때의 학부모들이 있다면 오늘의 일은 또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런 씁쓸한 의문도 절로 들었다. 또 그때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교조는 1999년 합법 단체가 되었다. 1989년 교단을 떠나야 했던 1500명에 이르는 해직 교사들은 1995년부터 모두 복직이 되었다. 지금 1991년의 '서남중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어쩌다 당시 학부모 농성을 주도했던 사람이나 학부모들을 만나 은근 슬쩍 그때 얘기를 꺼내면 멋쩍어 하고 더러는 내게 미안해 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그때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나는 고맙게도 26일 저녁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 전교조 선생님들의 분회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낮에 내게 전화를 해주었다. 전교조 선생님들께 내 의사를 전하니 모두 환영을 하더라고 했다.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전체 교직원 수는 40명쯤 된다고 했다. 그 중에서 전교조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13명이라고 했다. 3분의 1이 조금 못 되는 수였다. 그 중에서 9명의 교사들이 이번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여교사가 한 명 더 많았다. 그들은 나를 굳이 가운데 자리에 앉혔다. 아내의 옆이기도 했다. 아내는 전교조 분회 교사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나는 아내가 가장 연장자라는 사실에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아내가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전교조에 참여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니 아내는 동의를 해주었고, 모두 웃었다. 나는 잠시 교사들에게 1991년의 서남중 사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두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교사들이 회의를 마칠 무렵 나는 교사들의 배려로 한마디를 더 할 수 있었다. 나는 전교조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교단 민주화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생각하는 시야 때문에 그들은 전교조에 참여할 터였다. 다른 단체와 달리 전교조 참여에는 적어도 일정 부분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할 터였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의 소중함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는 나로서는 전교조에 참여하고 있는 교사들, 특히 젊은 교사들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25돌을 지내면서 다시 생각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진전도를 자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광주의 영령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일종의 정신적 채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사들은 교단 민주화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며 해직의 고통까지 감수했던 전교조 교사들에 대해 일정 부분 정신적 채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직 생활에 좀 더 '생각의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도 아니면서 교사들의 전교조 모임에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아내에게도 감사하고, 그 날 자리를 함께 했던 모든 전교조 선생님들께 감사한다. <지요하님은 1948년 충남 태안 출생했습니다. 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었습니다.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등이 있으며, 92년 충남문학대상, 99년 충청남도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겸임교수 역임했으며, 현재 태안문학회장, 충남소설가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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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아니면서 전교조 모임에 참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