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지 말라는데 왜 이리 불안하죠?"
오마이뉴스에서 펌지난 3월 8일 분당 모 고등학교의 불법 찬조금 문제가 불거지고 난 후 분당지역 각 학교는 자정 노력의 하나로 소위 '돈 걷는 어머니회'로 불리는 어머니회 조직을 강력하게 막고 있어 수년간 교사와 학부모, 학교를 부담스럽게 했던 찬조금 문제가 해결될지 기대와 의혹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돈 걷는 어머니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지난 10년간 어머니회 구성원으로 혹은 임원으로 활동하며 회비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1년에 10만원, 많게는 20~30만원의 찬조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회비는 소풍이나 운동회, 스승의 날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아이들
의 간식비로 사용되기도 하고 에어컨이나 전자오르간, 도서 등 학교 비품을 구입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선생님의 식사비·목욕비나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 구매 비용 등으로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어머니회' 사라진다는 말에 긴가민가하는 어머니들
작은아이가 올해 고3이 되었습니다. 고3의 경우 이전 관행대로라면 보통 30만원 이상 어머니 회비를 내야하기 때문에 10만원 정도였던 1, 2 학년에 비해 내는 부모님이나 걷어야 하는 부모님 모두 큰 부담을 느낍니다. 고3 학부모에게 좀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이유는 야간자율학습 비중이 다른 학년에 비해 높아 자율학습시간에 아이들에게 간식을 넣어 주거나 선생님의 저녁식사비를 보조하고 시간 외에 아이들을 돌보아주시는 것에 감사의 사례를 하는 등 학년에 따른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고3의 경우 1, 2학년에 회비를 내지 않던 어머니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회비 납부를 하도록 강권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회비를 걷어야 하는 각 학급의 어머니회 임원과 거절 의사를 밝히는 어머니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일어나 아이가 엄마에게 임원이 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일까지도 생깁니다. 새 학기를 맞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열렸습니다. 총회에 참석한 어머니들은 인근 학교의 찬조금 관련 보도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별 일 아니라는 듯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수 십 년간 있어온 일인데 왜 지금 와서 문제를 만드느냐며 그런다고 학교가 달라지진 않을 거라는 등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학부모 총회에서 밝히신 교장 선생님의 의지는 학부모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학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하고 도와주신 부모님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도와주신 결과 지금 우리 학교는 큰 부족함 없는 학교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학교에서 어머니회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들으셨겠지만 인근 학교에서 찬조금과 관련되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해 보도에 오르내리는 등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와 관련해 우리 학교도 올해부터는 임의 단체인 어머니회를 절대 결성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학교에는 법적 단체인 운영위원회 하나만을 두고 그 외의 단체는 없습니다. 그러니 전화를 해서 돈을 걷는다거나 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당부드리겠습니다."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러 온 수 백 명의 부모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올해는 얼마를 내야하는지 대충 각오를 하고 왔던터라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슨 말이래요? 어머니회 자체가 없는 거에요?"
"그렇다네요. 어머니회 임원도 뽑지 않잖아요."
"그럼, 왜 오라고 한 건데요?"
"정말 돈 안 걷는 거에요?"
"글쎄. 교장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니…. 그럴 것도 같은데…. 모르죠. 뭐."
"저러다 나중에 또 내라 마라 그러는 거 아니에요?"
"글세 말이에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부모님들은 아직도 어머니회 조직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어머니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총회가 끝나고 각 반 별로 모여 담임 선생님과 대담을 마친 학부모님들은 돌아가시라는 선생님의 권유에도 서로 눈치만 보며 뭔가 할 이야기가 남은 듯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 어머니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신 후 불안한 속내를 드러내 보입니다.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에요?"
"혹시 우리 애들한테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반장 어머니는 참석하신 부모님들 연락처 다 적어 두세요."
"돈 내지 말라는데 왜 이리 불안하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다면 모를까 공연히 이번 학년도 애들만 피해를 당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야…. 교장 선생님이 하지 말라잖아요."
"교장 선생님이 무섭긴 무섭네요."
"이럴 거면 왜 진작 교장 선생님이 나서지 못 하셨나 몰라요."
"나서지 못한 것이 아니고 안 나선 거겠죠."
"맞아요. 어머니회 임원들 하고 제일 가까운 분이 교장 선생님이잖아요. 교장 선생님이 요구하시면 어머니회에서는 그대로 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뭘." 학부모 총회가 끝나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어머니회 관련 회비납부에 대한 전화나 이전 어머니회 임원들 간의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교장선생님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분당 지역 다른 학교도 다르지 않아 아이를 중고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어머니들에겐 참 기쁜 소식입니다. 진작 왜 이런 결정을 하지 못했나 하는 것은 이제 와서는 불필요한 논의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교장선생님 등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들이 앞장서서 찬조금이나 촌지 없는 깨끗한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하신다면 수 십 년간 고쳐지지 않던 돈 걷는 어머니회의 관행도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바람직한 어머니회 모델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내신 성적 반영체제에서 학교에 입김으로 작용하지 않는 순수한 어머니회 운영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육성회의 폐단을 없애고자 도입된 어머니회 제도가 어느새 이름만 다를 뿐 육성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면 그런 조직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어머니회 조직을 없애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결단에 적극 지지를 보내며 다른 학교들 역시 이번 기회에 말 많고 탈 많은 어머니회 조직을 없애는 획기적인 처방을 한번쯤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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