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머리와 부탄가스 구입비도 학교발전기금?
[오마이뉴스 2005-04-19 17:21]
[오마이뉴스 이한기 기자]
체육대회에 쓰인 일회용 접시·떡·돼지머리부터 스승의 날 도서상품권, 학교 시계탑, 장학사 접대비까지 학부모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심지어 부탄가스 구입비와 학교신문 대금까지 이들이 갹출했다.
2004년 한 학교의 회계장부에 기록된 자모회비 지출 내역이다. 이 학교에서 학부모 234명에게 걷은 자모회비는 모두 702만원. 사실상 불법 찬조금이었지만,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돼 '별 탈 없이' 운영돼왔다. 학부모 1인당 3만원 정도를 부담한 셈이다.
다른 학교의 2005학년도 학부모회비 세입·세출 예산서를 보면, 회비 수입만 2000만원이 넘는다. 임원 20명은 20만원, 나머지 회원 110명은 15만원씩 갹출한다. 이 예산은 학생 장학금, 태권도 지원비, 스승의 날 행사비, 교지편찬 지원금, 3학년 수능떡, 경조사비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끔 편성돼 있다. 이 쯤되면 학부모들의 찬조금 없이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다.
19일 오전 11시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 앞에서 '학교 불법찬조금 근절 및 학교발전기금 및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불법 찬조금 사례를 발표한 뒤 교육부 감사담당관실에 감사 요청을 했다.
참교육 학부모회는 "올해 불법 찬조금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례가 전국 162개 학교였다"며 "이는 지난해 60여일 동안 120여 건이 접수된 것에 비하면 일수는 20일 가량이 줄었는데도 건수는 40여 건이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참교육 학부모회는 "교육부가 지난해 7월 학교발전기금을 폐지하고 학부모로부터 일체의 잡부금을 걷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학교 현장에서는 불법 찬조금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며 "교육당국의 불법 찬조금 근절 의지가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중구 OO외고
"학급 대표가 1인당 30만원씩 걷고 있다. 현금이나 통장 입금을 요구한다. 한 학년 6학급, 각 반 40명X30만원=7200만원이다. 불법 찬조금 근절을 바라며 회비를 돌려받고 싶다. 계좌번호 OO은행 OOOOO-OO-OOOOO 예금주 OOO."
서울 송파구 OO중학교
"찬조금의 액수가 지나치다. 몇 년 전보다 너무 많아져 놀랍다. 회장 100만원, 반대표 이사 30만원, 대의원 2명 20만원씩이다. 교실에 필요한 물품이 아닌 교사 회식비로 쓰인다. 총 42학급이면 70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지나치다. 특목고에 갈 어머니들은 교사의 눈치를 보느라 더 많이 낸다. 어머니들의 불만이 많다. 계좌번호 OO은행 OOOOOO-OO-OOOOOO 예금주 OOO."
경기도 용인시 OO외고
"학부모가 찬조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작년에 사용한 내역을 보자고 하자, 교무부장이 따로 불러 '이 학교에서 아이를 졸업시키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임원을 그만두라'며 반협박성 발언을 했다.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들이 학교발전기금을 많이 내주면 좋은 거 아니냐'며 면박을 주고 모욕을 주어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쪽에서는 감사를 취하할 것을 종용했다."
부산 중구 OO초등학교
"학부모 임원 회비로 3만원씩을 거둬 교실 선풍기, 정수기, 청소도구, 선생님들의 간식비와 회식비, 목욕비, 차비, 체육복비 등으로 쓴다. 또 가을에는 바자회를 해서 학년별로 일정액의 수익이 없으면 엄마들이 돈을 거둬 채워 넣고 그 돈으로 학교 비품을 사 넣고 고장난 교문 고쳤다고 한다. 하교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해마다 선새님들의 체육복을 새로 구입하고 어머니들은 따라다니며 응원해야 한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전남 목포 OO초등학교
"1학년 6반 6명 임원 1인당 10만원의 회비를 내는데 촌지에 따라 대표가 정해진다. 임원과 교사들의 상견례 식사자리를 하려다가 교육청에 제보가 들어가 시끄러워져서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천천히 하자고 한다. 돈을 걷어서 학교물품으로 쫄대, 파일, 생수, 화장지, 비닐커버, 책꽂이, 교구굽입을 한다. 하교 급식이 안되니까 어머니들이 이때다 싶어 교사들의 점심식사를 제공했다. 돈의 대부분은 교사 접대비로 쓰인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와 같은 기금 모금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64조 '학교발전기금 조성방법 및 학교발전기금 조성 운영방안'에 위배된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학부모회 등 자생단체에서 임의로 기금을 할당하고 강제적으로 분담해 교사회식비, 야간자율학습 수고비 등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찬조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금 방법에서도 여러차례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부모를 압박하는 '앵벌이' 방식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참교육 학부모회는 "학교발전기금으로 모금하는 경우에도 기존의 학교운영위원회 회비, 학급 대의원 회비, 어머니회 회비, 야간자율학습 수고비 등의 명목으로 걷힌 돈과 사용 용도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같이 모인 불법 찬조금은 학부모 1인당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에 이른다. 학교별로는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이에 참교육 학부모회는 불법 찬조금 조성의 온상이 돼온 학교발전기금 제도를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설비나 기자재 비용, 체육이나 학예활동 지원, 학생복지와 자치활동 지원 등은 교육재정으로 충당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촌지만큼이나 뿌리깊은 교육 병폐인 불법 찬조금 존폐 여부는 교육개혁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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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돼지머리와 부탄가스 구입비도 학교발전기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