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부의 신'을 보았다. 그동안 꽤 여러편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대로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면 되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학벌주의 문제며, 천하대 특별반 운영의 문제이며..... 뭐 드라마니까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또 드라마란 일정부분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니까.......드라마가 무슨 사회 계몽 역할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드라마를 넘어서 오버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뭔가 불편한 심기가 드는 것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 드라마가 끝날때마다 무슨 비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로서 그 무슨 주제넘은 오버 액션이란 말인가? 드라마가 자칭 공익프로그램으로 바뀌고 마는 순간이다. 자유롭고 꿈꾸는 듯 보이는 아름다운 청소년 배우들이 나와서 공부를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좀 어이가 없다. 이런 일에 동원된 사랑스러운 배우들이 아깝다. 수학 공식을 무조건 암기하라니..., 수학계산이 구구단 외워서 튀어나오듯이 하라니.... 나의 학창시절, 나를 그저 계산기계 취급하던 그 지긋지긋하던 수학시간, 십수년을 지나서도 가끔 악몽을 꾸게하던 그 의미없던 수학시간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 드라마에서 학교의 무기력과 무책임에 대해 공격할때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아이들의 극기 훈련 과정이 감동스러운 점도 있다. 또한 수업에서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 추진력을 가진 한 인물의 강력한 리더십이 진정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에 슬쩍 묻어서 무조건 암기, 공식대입, 단순한 대입법, 무조건 문제풀이, 비법 암기,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것들을 공부라고 우길 수는 없다. 공부를 비법 터득과 극기훈련으로 바꾸어 놓는 일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무책임한 현실 안주형의 교사들의 행태 만큼이나 어처구니없고 무책임한 일이다.
지식의 구조나 원리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을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 극기훈련을 아무리 열심히하고 또 그 과정이 감동스럽다 한들, 그것이 극기 훈련이상의 의미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수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아름다우며,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인류가 만들어낸 그 감동적인 학문들을- 예컨데 수학, 언어, 역사, 문학, 과학, 예술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그렇게 야만적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드라마 '공부의 신'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런 시대착오적인 과거의 방식을 고스란히, 더 철저히 물려주자고 오버를 하고 있다.
'공부의 신'은 지식의 원리나 구조를 깨닫는 것을 금기시한다. '생각하지마라', '무조건 외워라', '자동으로 나오게 하라'를 무슨 공부 비법인양 떠들고 있다. 입시를 핑계삼을지 모르겠으나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방식은 현실의 입시에서 조차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힘든 과정속에서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이라도) 지식의 원리와 구조를 깨달았을때 느끼는 즐거움과, 그리고 학문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꿈과 호기심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때 가슴 설레게 느끼는 기쁨을 원천 봉쇄해두고 어설프게 꿰어맞춘 문법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일 같은 것을 공부에서의 흥미라고 말하고 있다. '하면된다'의 정신에 깃들여 있는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것이 좀 슬프다
제작자들은 이 드라마가 학부모와 학생들을 텔레비젼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 될까? 자신들은 그저 드라마를 만들 뿐, 학생들에게 진짜 공부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은 혹시 자신들이 공익을 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라나는 세대에게 학문과 공부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을 방해하면서 공부를 구태의연한 극기 훈련쯤으로 돌려 놓은 것이 얼마나 잘못인지도 알지 못한채, 그리고'공부의 신'에는 공부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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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에 공부가 없다
